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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r 03. 2021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셋넷영화이야기50 : 서울, 남조선의 평양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위하여 


술 때문에 아내와 아들이 떠난 건지, 그들이 떠난 뒤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건지 헷갈리는 주인공은 절망하지 않는다. 직장을 잃고 자기가 소유한 것들을 마지막 하나까지 라스베가스의 술병 속으로 소멸시키면서 좌절하지 않는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하고 박제된 삶에 정면으로 저항한다.   

   

그가 마지막 저항의 싸움터로 정한 라스베가스에서 만난 여자, 창녀 천사(그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에게 “난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라고 고백하면서 격렬한 키스를 퍼붓지만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의 하늘처럼 붉게 물든 라스베가스의 하늘 아래서, 매일 끈적거리는 남자의 정액을 씻고 알코올 냄새에 젖은 육신을 서로에게 의지할 뿐이다. 외롭고 지친 영혼들을 기대고 있을 뿐 그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라스베가스의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요구하고 사랑을 이용하고 사랑의 영혼을 배신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의 몸을 탐하지 않고 사랑의 이야기를 목말라한다. 아무런 대가나 보상 없는 사랑의 눈짓에 머물고 싶어 한다. 단지 곁에만 있어 달라고 애원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지켜 주고 무작정 기다릴 뿐 서로를 욕망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다.      


그건 라스베가스의 사랑이 아니다. 서울의 사랑이 아니다. 주인공 알코올 중독자는 곁에 잠든 창녀 천사를 평화로운 눈길로 바라본 뒤 창백한 손으로 움켜잡고 있던 라스베가스를 놓는다. 습관처럼 사로잡혀 있던 세상에서 벗어난다. '난 단지 있는 그대로의 그를 지켜주고 사랑했다.'는 창녀 천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해맑게 웃는 주인공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이 스크린에 번진다. 그는 행복하게 라스베가스를 떠난다. 


우리는 서울을 떠나지 못한다. 제각기 품고 있는 의미들 밖으로 내팽겨진 일상에서 알코올 중독자처럼 비틀대고 있는 내 안의 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끌어서라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대박 나는 인생을 꿈꾸는 네 속의 창녀를 참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당신은 오늘도 서울에 머물고 있다. 지겹게 복제되고 차갑게 박제된 서울을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다. 날마다 절망하면서, 날마다 머리로만 입술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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