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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r 09. 2021

원더풀 라이프

셋넷영화이야기51: 선택


내 삶이 누군가의 행복일 수 있다면...     


천국

허름하고 음침한 건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청년, 중년의 남녀와 어린아이까지 모두 표정이 없다. 그들은 그곳에서 단 일주일의 시간이 허용된다. 허락된 시간 안에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살면서 가장 소중했던 인생의 추억 하나를 스스로 기억해야 다음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그렇다. 그들 모두는 죽은 이들이고 영원한 세상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고 있다. 중년의 남자가 묻는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기억들은 모두 다 잊을 수 있나요? 기억에서 지울 수만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맞네요.”       

 

행복

다음 세상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죽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하게 하고 기억을 재현하도록 돕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끝내 선택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시간으로 떠나지 못한 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서성거린다. 그들 중 전쟁터에서 죽은 젊은이는 70대 노인을 만나 인터뷰를 하다가, 그가 전쟁에 나가기 전 자신이 사랑했던 약혼녀의 남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인의 지루한 인생 기억을 좇다가 그의 아내가 되었던 약혼자가 죽고 나서 이곳에서 자신과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선택했다는 기록을 발견한다. 젊은이는 마침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한 뒤 영원한 시간으로 떠난다. “50년 전 나는 누군가의 행복이었어.” 

    

선택

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었던 젊은이와 함께 죽은 이들의 선택을 돕는 10대 소녀는, 젊은이를 고요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애틋함이 차오를 때마다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담담해지려 애쓸 뿐이다. 그녀가 살았던 짧았던 이승의 시간 속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신을 떠났던 기억들로 뒤척이며 또다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행복을 찾고 난 뒤 영원한 시간으로 떠나는 젊은이와의 이별을 아쉬워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신을 후회 없이 감싼다. “나는 선택 안 해. 또다시 잊혀지는 게 두려워.”     


떠남

가슴 뛰는 영화 제목을 비웃기라도 하듯, 초라한 화면과 무표정한 사람들의 덤덤한 인터뷰가 느릿느릿 흐르는 영화를 지루하게 보다가 어느 순간 영화를 보고 있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선택해야만 한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순간을 기억할까. 어떤 삶의 사건을 떠올리게 될까. 저들처럼 영원한 시간으로 떠날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내 삶이 누군가의 행복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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