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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y 20. 2021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셋넷영화마지막 이야기 61 : 감수성


행복했던 시간도행복할 시간도 아닌지금 행복한 시간을 위하여!     


가끔 삶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요즘처럼 삶이 퍽퍽하고 단절과 제한으로 만남과 인연이 멀어질 때면, 질문은 무겁고 깊게 다가온다. 하고픈 일들을 내려놓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다가 문득, 삶의 목표를 드높이고 꿈을 가꾸던 시절이 있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모든 소통이 통제되는 이 시절이 어쩌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울함이 일상의 고단함을 두려움의 질긴 어둠으로 끌어당기는지도 모른다.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려고 공부하고, 행복을 위해 일하고, 행복한 내일을 꿈꾸며 견딘다. 하지만 행복은 변한다. 나이가 차고 삶에 닥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아픈 이들은 건강한 행복을 빌고, 가난한 이들은 풍요로운 행복에 영혼을 건다. 외로운 이들은 사랑 넘치는 행복을 갈망하지만 정작 꿈꾸던 삶이 실현되면 곧 다른 행복을 찾아 바삐 떠난다. 우아한 행복에 취하고, 고급한 행복에 짓눌리고, 표준 행복에 사로잡히는 현실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다면 그건 ‘열등감’이 건네는 악마의 거래가 아닐까.  

   

열등감은 편견에서 비롯된다. 맑고 소박한 행복이 오염되는 건 ‘편견’ 때문일 것이다. 편견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누구나 품게 되는 사랑과 욕망의 감정이다. 편견의 대가로 수많은 사람 속에서 단 하나의 사랑을 선택하게 된다. 편견은 무시할 것도 아니고 극복해야 할 목표도 아니다. 편견을 품고 있고 편견에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편견의 폐해는 그로 인해 생겨난 열등감 때문에 온 삶으로 확대된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어 자기를 사랑하지 않게 하고, 타자를 미움과 경쟁의 대상으로 만든다. 편견의 노예가 되면 행복할 수 없다. 오래전 행복했던 낡은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언젠가 행복할 애매한 날들을 대박처럼 기다릴 뿐이다.      


편견에서 벗어나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행복은 조건과 처지에 따라 쉽게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행복이란 어떤 목표를 성취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지치고 힘겹고 외로움이 도적처럼 들이닥칠 때,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그물망이 있다면 그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만난 주인공 남녀는 각자 불행했지만 행복한 시간들로 만나고 헤어진다.     


태어나면서 지독하게 불행했던 남자 주인공은 생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을 탈출하지만, 동생은 얼어붙은 지하도에서 죽고 살아남기 위해 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살아간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처음이자 마지막 행복을 꾸려가지만 그마저도 불행으로 끝나고 사형수가 되어 세상을 원망한다. 세 번째 자살에서도 살아남은 여주인공은 세상의 부럼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지만, 사촌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바보같이 앞가림을 못했다는 질타를 받고 열다섯 살 소녀는 영혼의 성장을 멈춘다. 이후의 삶이란, 엄마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일상의 자리는 날마다 피폐하게 갈라진다.      


두 사람은 사형 날을 기다리는 교도소 면회실에서 어색하게 만난다.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아파하는 상대방을 바라보고, 한 줌 가식 없이 상처 가득한 서로를 위로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 한 송이 꽃만큼의 희망도 건네지 않는다. '지나간 슬픔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닥칠 아픔은 곁에 머물며 지켜주겠다'는 쟈니의 다짐(영화 프랭키와 쟈니)처럼,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보듬고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그들이 마주한 시간은 세상의 물질과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흔들리지 않는 평화의 순간,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는 셋넷들과 행복한 시간 속에 머문다. 무시무시한 철조망도, 서슬 퍼런 이념의 사슬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가둘 수 없다. 셋넷들과 생생하게 느끼는 행복한 시간을 당신들에게 선물한다. 그러니 부디 '안녕, 행복한 시간들! 두려워말기를...'



*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졸업생 향이에게 물었다. 홀로 떠다니며 살다 서둘러 가족이 생겼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궁금했다. "싸가지 있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싸가지, 자기다움, 타인(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소통, 그게 바로 감수성이다. 싸가지 있는 자녀로 키우고 싶다면 풍성한 감수성의 정원에서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 그 정원은 엄마 아빠의 감수성(싸가지)이 거름이 되고 검은흙으로 뒤덮여 깊어져야 한다. 나와 내 안의 나, 나와 가족, 나와 이방인(다름), 나와 세상 사이를 싸가지 있는 소통으로 가꾸는 일상의 작업이 감수성 연습이고 감수성 훈련이다. 당신이 품는 싸가지(감수성)의 격이 한 번뿐인 삶을 행복의 나라로 이끈다.


* 수 천년 동안 단 하루도 한결같지 않았던 모래사막에서 어찌 불멸의 사랑을 꿈꿨던가.(잉글리쉬 페이션트) 셋넷 영화 이야기를 마칩니다. 굿나잇 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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