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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n 03. 2021

알면 사랑한다

셋넷 여행 이야기1 : 길 위에서 길 찾기


감수성은 맑음(착한 기운)과 탁함(파괴적인 기운)이 늘 섞여있다.


셋넷학교는 ‘알면 사랑한다-탈북 청소년들이 길 위에서 부르는 삶의 노래’라는 주제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해마다 국내외 낯선 곳들을 여행했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과 만나고 제3의 언어(문화)를 매개로 다양한 체험과 봉사활동을 했다. 셋넷의 여행은 감수성 연습과 훈련을 위한 개인과 집단의 현장체험활동이다.   

  

2006년 여름, 중국-몽골로 첫 여행을 떠났다. 셋넷 아이들이 중국에서 겪었던 어두운 기억들과 담담하게 만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 필요했다. 셋넷 아이들에게 중국은 떼어낼 수 없는 끈적끈적한 기억들로 남아있다. 닫힌 북조선을 뛰쳐나와 처음으로 문화충격을 받았던 곳이고, 목숨을 걸고 생존해야 했던 쓰라린 상처와 아픔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곳이다. 어쩌지도 못한 채 갑자기 헤어져야 했던 피붙이들이 어딘가 떠돌고 있는 곳이고, 남한에 올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키다리 아저씨들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중국 베이징에서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활동을 했다. ‘당신은 평화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북경 고궁을 방문한 외국인 가족에게 용감하게 다가갔고, 아이들의 당돌한 행동에 재미있어하던 외국인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질문했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대답하던 한 아이가 곧바로 대답을 바꿨다. “노우스 코리아”. 그리고는 뒤에 오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우리가 사우스야, 노우스야?”


2007년과 2009년 여름, 남북의 청소년들이 제주도로 자전거 하이킹을 떠났다. 인천항을 출발하여 배 안에서 진행된 토론과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남한 또래 대학생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남한 대학생들의 자신감과 자만심은 자전거 하이킹이 시작되자마자 사정없이 무너졌다. 셋넷 아이들은 발표나 토론에는 서툴렀지만 자전거 위에서는 바람처럼 날래고 상쾌했다. 한 시간 이상 뒤처져 따라오던 남한 대학생들은 곧 깨달았다. 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자신들보다 촌스럽고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보다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자신들과 다른 경험과 다른 능력을 품고 있다는 것을.    

  

여행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숨기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들을 꾸밈없이 나눌 수 있는 삶의 놀이터다. 셋넷 청소년들은 교실의 배움을 넘어서서 길 위에서 새롭게 정체성을 형성하고, 낯선 문화 속에서 스스로 건강하고 당당하게 공동체성을 만들어 간다.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하고, 나를 둘러싼 상처의 벽을 허물고 용기 있게 세상과 소통한다. 집과 가족을 떠나 막막했던 길 위에서 위축되고 버림받았던 나를 다시 사랑하며 나다운 꿈을 심고 가꾼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랑 없이는 못 살면서도 평등하고 따뜻하게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상처를 주고받는다. 사랑으로 위로를 나누고 살아갈 힘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내 안의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사로잡는 편견과 열등감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내 것처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다른 타인의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살피는 일상의 정성들 속에 참된 사랑이 깃든다. 그때 비로소 ‘알면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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