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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n 10. 2021

ROOTLESS.. 영국

셋넷 여행 이야기 2: 脫南(탈남)


다시 길 떠나는 아이들


셋넷에서 공부하고 세상으로 나간 망채들 인연은 졸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검정고시 시험 날이면 졸업생들이 시험장에 나와 후배들을 응원하고 파티를 준비한다. 재학생 생일잔치가 있을 때마다 초대하고 국내외 캠프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준다. 매년 공연과 졸업식에 초대해서 새 힘과 기운을 얻도록 배려한다. 그런데 자주 보던 졸업생들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아 근황을 물어보았더니, “걔요? 한국 떴어요.”   

  

2007년 무렵 사라진 졸업생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영어공부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아이들이 영어권 나라로 갔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작별의 정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져서 서운하기도 했다. 기나긴 여정 끝에 도착한 같은 민족의 나라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난 이유가 궁금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직접 듣고 싶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 윗마을 학생과 아랫동네 선생(박상영, 2021 코폴커뮤니케이션)   

  

7월 25일 금요일, 인천공항-암스테르담-런던 

서너 번의 음식을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재미없는 영화들을 무료하게 본 뒤에야 헨리 8세와 천일의 앤의 나라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열두 시간 가까이 비행기 안에 갇혀서 박완서의 소설과 김용택의 시들을 읽었다. 사이사이 개교 5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며 새로운 교육내용을 구상했다. 문득, 나보다 앞서 이 여행을 거쳐 간 셋넷 아이들이 떠올랐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또다시 기나긴 여정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영국 신사의 품위와 권위를 기대했던 히드로 공항은 노후 자금을 마련해 놓지 못한 채 은퇴한 몰락한 노신사의 모습 같다. 공항 로비에서 만난 상연 샘은 가난한 유학생활로 위태로워 보였지만 반짝이고 글썽이는 눈망울이다. 짧고 도타운 포옹이지만 그도 나도 울컥하는 뜨거움으로 오래 삭힌 그리움을 감지한다. 셋넷학교 힘겨웠던 시절을 씩씩하고 거침없이 감당했던 그녀의 마중으로 낯선 나라는 이방인에게 편안하게 다가온다.     


대물림으로 사용하여 온통 생채기 투성인 낡은 장난감 같은 꼬마 지하철을 타고 런던보이들과 기분 좋게 섞인다. 온갖 인종들이 뒤섞인 구수한 시골장터에 들어선 설렘으로 이방인은 흥분한다. 비틀스와 셰익스피어 때문에 오래전부터 사귀어 왔던 친구의 나라지만, 세상을 향해 저질렀던 온갖 나쁜 짓들 때문에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 불량배 친구 영국이기에, 애증으로 뒤얽힌 난감함으로 런던 첫 밤을 맞는다.   


        

* 셋넷 여행 이야기는 꼰대 교사의 여행일기다. 여행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감상은 기대하지 말기를... 첫 번째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 기나긴 여정을 거쳐 한국에 왔지만, 다시 탈남하여 세상을 떠도는 뿌리 뽑힌 아이들을 무작정 찾아갔던 길 위의 교사 일기다. 2008년 여름 영국과 노르웨이 여행은 오원환 감독(현 군산대 교수)이 로드무비 다큐영상으로 기록했고, 셋넷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2008 rootless, 57분)

* 상연 샘은 2005년 셋넷학교 궁핍했던 영등포 시절 살림 교사를 자청했다. 런던대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가 된 뒤, 영국의 탈북 이방인들을 도우며 멋쟁이 런던보이 남편과 살고 있다

* 사진 : 여행에 동행했던 오원환 감독과 1기 졸업생 하늘이(당시 성대 재학). 2008년 연인이었던 상연샘 부부가 런던에서 제일 오래된 맥주집으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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