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영 Jun 17. 2021

ROOTLESS.. 런던

셋넷 여행 이야기 3 : 정과 친절


영국의 친절과 한국의 정()


7월 26일 토요일     

민박집에서 제공한 깔끔한 영국식 아침식사로 채비를 하고, 런던의 명물 빨강버스 2층 맨 앞자리에 앉아 파주 영어마을 같은 런던 길거리를 떠다닌다. 들뜬 기분도 잠시 잘못 탄 버스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 명의 런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본다. 한결같은 친절함으로 모두 다 다른 노선과 방법을 일러준다. 개성 넘치는 친절함의 혼란은 하루 종일 계속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몹시 존중하고 흠뻑 누리고 있다는 강렬한 첫인상만큼이나 무질서하고 무책임하게 보이는 런던 사람들의 극단적인 모습을 곳곳에서 만나니 어지럽다. 이런 모순된 힘들이 영국의 역동성인지, 아니면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대책 없는 3대째 아들놈을 보고 있는 건지 도무지 헷갈린다. 하지만 존재 이유를 모를 신호등, 함부로 무시되는 공공의 질서, 거리마다 자연스럽게 버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들, 시끄럽고 개성 넘치는 술집의 소음들이 이곳을 용감하게 찾아든 탈북 유랑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수많은 인종들의 표정, 말, 행동, 옷치장, 무관심도 이들의 불안한 방문을 위로했으리라. 같은 민족이라는 또 하나의 이념으로 포장된 친절 아닌 정(情) 때문에 남한에서 상처 받은 탈북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위안을 받았으리라. 내가 경험하고 느껴온 한국에서의 타자에 대한 친절함이란, 내가 그를 무시해도 되는 존재인지, 아니면 호들갑을 떨며 복사해야 되는지를 파악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대다수 탈북자들의 촌스럽게 보이는 외모와 우스광스러운 말투는 분명 이들 존재를 초라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들고, 조급하게 만들고,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적으로 만들었을 게다. 한 치 앞도 분간 못할 안개처럼 낯선 익명의 섬 영국에서 이들은 또다시 외로웠겠지만, 누군가의 감시에서 벗어났을 때처럼 온도를 잘 맞춘 온탕에서의 온화함을 느꼈으리라.  

    

영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과거 영광의 기억들로 꾸역꾸역 찾아드는 전 세계 순례자들 틈에서 본 것들은, 내가 경험했던 유럽 대륙의 볼거리들에 비해 소박하고 단순했다. 원치 않았던 사생아(미국)를 낳은 엄마가, 갑자기 졸부가 되어 거들먹거리면서 세도를 부리는 아들(미국) 덕분에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삐딱하고 불편한 심사로 속이 뒤틀렸다. 오히려 타는 목마름으로 찾아든 술집마다 넘실대던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활달함에서 버킹엄 궁전과 타워브리지에서 채우지 못했던 살맛 나는 영국 뱃놈들의 기운을 맛볼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ROOTLESS.. 영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