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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n 24. 2021

ROOTLESS..뉴멀든

셋넷 여행 이야기 4 : 언어


생존과 영어 배우기


7월 27일 일요일     

어제는 런던이 품고 있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어지러운 모순들을 걸었다. 오늘은 천천히 사람들 속을 거닐어 보리라. 너무 아득한 곳에 있어서 이순신 장군보다 훨씬 외로워 보이는 넬슨 제독이 비둘기 부하들과 지키는 트라팔라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하늘이(1기 졸업생)가 얘기한다. 남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를 꼭 해야 하는데 국내든 외국에서 영어를 채울 방도가 없다. 그래서 대안 없는 탈북 젊은이들에게 탈법적인 영국행은, 위험하고 불확실하지만 삶을 던져볼 수 있는 생존카드일 수 있다. 말이 된다. 오나가나 그놈의 영어 때문에 고단한 영혼들이 어디 한둘인가.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선 아이들의 용기와 결단이 부럽기만 하다. 

     

사람과 정보가 막막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로 런던 근교 작은 동네 뉴멀든으로 간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한국 타운이 형성되어 있고, 바람처럼 영국으로 스며든 탈북 난민들이 모여서 미지의 시간들을 서성거리는 곳이라 들었다. 등 돌려 앉아 웅크리고 있는 은둔 도시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어디에도 만나고픈 셋넷들을 볼 수 없었다. 조기유학 온 어린아이들 몇몇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음식을 먹고 있었을 뿐이다.  

   

오후 느즈막 런던의 마지막 시간을 상연 샘과 남친 닐과 함께 한다. 순수 런던 토박이 닐은 건강하고 쾌활한 문화인류학도 영국 청년이다. 그를 따라 맥주를 직접 지어내는 곳에 가보고,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으로 찾아들어 명랑한 대화를 나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긴장 문제, 영국 내 여러 갈래 민족관계, 영국 여왕이 국민에게 차지하는 영향력 등 진지하고 솔직한 얘기들이 상연 샘의 전문 통역 속에 오간다. 살아 있는 효모가 창조해내는 생맥주의 향연 속에서 대영제국 후예와의 베틀 대화가 깊어진다. 여행 책자를 들고 바삐 스쳐가는 여행자들이 맛보지 못할 런던의 속살들을 들춰 보며 기분 좋게 취해간다.      


7월 28일 월요일~29일 화요일, 스톤헨즈-바스-캐슬쿰-코츠월즈   

허허벌판에 위치한 석기시대 돌기둥 스톤헨지를 둘러보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성스러운 종교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하다. 스톤헨지 돌들이 놓인 모양새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심심풀이로 한판 놀다가 치우지 않은 윷놀이의 잔재로 느껴지건만, 한국이나 영국이나 놀이판에서 폼 잡는 사람들은 정말 재미없다.


빗길을 뚫고 도착한 ‘바스’는 1세기 로마의 기운이 유럽을 뒤덮을 무렵 영국을 점령한 로마군들이 헛된 피를 씻어내며 소란스럽게 휴식을 취했다는 곳이다.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서 편하게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도시 전체의 신비로움에 압도된다. 멀리 산허리를 따라 늘어선 오래된 집들은 도열한 로마 군병의 유령들처럼 비현실적이다. 집집마다 삐죽이 솟아난 굴뚝들의 막힌 구멍에선 잊힌 세월이 삭혀내는 역사의 군내가 나는 듯하다.    

  

‘가장 잉글랜드다운 시골’이라는 여행 책자의 표현에 홀려서 찾아든 코츠월즈의 숨겨진 숲 속 마을은 꿈결 같다. 한순간 멈춰 버린 시간 속에 던져진 듯, 마을은 추억의 향기를 고요하게 품고 오랜 시간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숲 속 터널 길과 드넓은 구릉지, 밀밭과 낮게 드리운 하늘, 빠르게 밀려가는 구름, 마을 앞 냇가에서 투명하게 떠다니는 송어 떼,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게 변해가는 변덕스러운 날씨들을 느긋하게 맞이하며 낯선 이국의 풍경에 아스라이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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