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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l 08. 2021

ROOTLESS.. 글래스고

셋넷 여행 이야기 6 : 학력


철호가 한국을 떠난 이유


8월 2일     

낯선 땅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철호(가명)를 얼싸안았다. 모자를 깊이 눌러썼지만 흐려지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했다. 셋넷 시절 명랑하고 씩씩했던 녀석은 꿇리는 기색이 없었다. 이 도시에 30명 남짓 흩어져 있는 북한 사람들은 이미 자리 잡은 중국인이나 파키스탄인들처럼 서로 왕래가 없단다. 여기서 만난 고향 여자 친구와 살고 있는 집에 가 보니 신혼부부 집처럼 아기자기했다. 녀석이 들려주는 음악이 고향노래라서 뜻밖이었다. 한국에서는 눈치가 보였지만 맘 편하게 들으며, 보고 싶은 북한영화들도 본단다. 이미 난민 비자를 받고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와 미용을 배우고 있었다. 비자 신청 대기 상태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지우와 경수의 어두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여유로웠다. 영국지사에 발령 난 제자 집을 방문한 은퇴한 스승 같은 느낌으로 여유롭게 스코틀랜드의 첫날밤을 맞는다.      

 

8월 3일     

스코틀랜드 수도이자 북해의 거친 바다 옛 영화로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에든버러에 넋을 잃는다. 도시 전체에 과거 현재 미래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털들이 성성한 거구들이 펜 파이프를 불며 북을 두드리고, 골목길에서는 줄 인형이 롤라 스케이트를 탄다.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동전을 던지며 1인 밴드의 경쾌한 음악과 노래를 축복한다. 자동차가 사라진 거리는 마술처럼 꿈틀거리고 춤춘다.      


철호는 정착금을 주고 집을 주었던 한국이 싫어서 떠나온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격시험들이 힘겨웠고, 무조건 학력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어서 주변부 일자리들을 기웃거리면서 방황했다고 한다. 하는 일마다 불안했고 선택한 자리마다 겉돌다가 정처 없는 심정으로 떠났단다. 경계를 넘는다는 게 두려웠지만 학력이나 인맥에 얽히지 않는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고 한국을 떠난 심정을 회상했다. 자신의 무모한 선택이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다짐한다. 뭘 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 무심하게 대해주는 이 나라가 좋단다. 사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눈치 보지 않게 외면해주는 이곳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 그만큼 편안하단다.    


      

* 2018년 여름 다시 만난 철호는 그 도시의 유명 한국식당 수석 요리사가 되었고, 다국적 종업원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의 다짐처럼 사내아이 둘을 낳아 행복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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