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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l 14. 2021

ROOTLESS..스카이섬

셋넷 여행 이야기 7 : 퍼미션 투 댄스(라이프)


잘 사는 삶.. well life, rich life     


8월 5일 화요일     

스코틀랜드의 진수를 맛보러 1박 2일 짧은 소풍을 떠난다. 끝없이 이어진 길이 한순간 꺾이면서 낯설게 펼쳐진 광활한 풍광에 압도된다. 눈이 녹색에 반하고 온 몸이 초원의 빛으로 차츰 젖어든다. 가슴이 풀빛으로 채워지고 토해내는 숨마저 투명한 녹색 빛깔이다. 영혼마저 온통 녹색으로 물들 무렵 자동차는 더는 나아갈 수 없어 도로를 벗어나고 만다. 이 낯선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벅차오르는 떨림의 정체는 무엇인가. 스코틀랜드 최북단 스카이 섬 산들 사이로 저무는 해는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신비로운 빛으로 뒤척인다.  


황량한 섬 언덕에 외롭게 자리한 유스호스텔 여주인이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 숙소에 한국인들이 처음인가. 맨유의 박지성을 통해 조금 알려졌겠지만 인구가 남북한 합쳐 칠천 만이라고 하니까 눈이 커진다. 북한 사람을 만나 봤냐고 대뜸 물어온다. 북핵문제가 국제 뉴스거리로 많이 보도되었나 보다. 속으로 혀를 날름거린다. 아줌마, 지금 당신 숙소에 두 명이나 묵고 있어요.    


8월 6일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또 한 명의 셋넷인 민근(가명)이가 만나지 않겠다고 거부하더니, 마음을 바꿔 집으로 초대했다. 먼 곳까지 와서 녀석을 보지 못하고 떠나면 어쩌나 안타까워하던 중에, 녀석이 마음을 열었다. 한국 사람을 만나 자칫 꼬일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들로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임신한 아내와 함께 탈남을 감행한 민근이네 가족이 올망졸망 사는 집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가족과 아이를 우선 배려하는 이 나라 문화가 내어준 공간에서 행복해 보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무직보다 배관공, 버스기사, 자동차 정비공이 돈을 더 많이 번단다. 한국에서는 뭘 하려 해도 진입장벽처럼 높다란 기준과 자격들이 훼방을 놓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걸림돌이 없어서 좋단다. 민근이가 따라주는 독한 보드카에 취하며 한국을 떠난 셋넷들의 막막했던 심정들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기왕 떠났으니 여기서 폼 나게 잘 살라고 눈시울을 붉히고, 지친 여행자는 가물거리는 곤한 의식을 놓아버렸다.     

              

* 2018년 여름 다시 만난 민근이는, 뉴몰든 한국식당 주방장 일을 하며 두 아이를 지키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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