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Aug 17. 2019

국가는 돌이키기보다는 숨기기를 택한다

HBO 체르노빌 5부작


미드 ‘체르노빌’을 꼭 보라는 추천을 받은 게 겨우 몇 달 전이었다. 얼마나 평이 좋았으면 이렇게 금방 왓챠플레이에 떴을까. 5부작이라 큰 시간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지만, 마음의 부담은 적지 않은 작품이었다.


당분간은 혼자 자는 것도 씻는 것도 불 끄는 것도 무서울 거다. ‘체르노빌’은 진실을 축소하고 잘라내 교묘한 거짓으로 만든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무섬증은 이런 이야기에 가장 강하게 발동한다.


위험한 것을 다룰 때는 많은 시간과 주의,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며 어떤 규정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는 당연한 순리가 멋대로 가려졌다. 체르노빌뿐 아니라 당시 소련에서 사용하던 원자력 발전 시스템의 안전장치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검열됐다. 사고가 정확히 파악되고 수습되어야 할 가장 첫 순간에 사고의 규모와 경위는 계속해서 축소됐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그 모든 은폐가 초래한 비극과 희생을 담는 데 최선을 다한다.

책임을 요령껏 피하고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진실 편집 행위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특히 공공행정은 언제나 잘못된 것을 돌이키기보다는 없는 척 하기를 택한다. 돌이키는 데에는 또다시 수많은 결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이름의 크기만큼, 뭔가가 잘못됐을 때 감당해야 할 것도 크기 때문이다.


효율과 안전은 대체로 공존하기 힘들다. 진실의 비용을 줄여 보려 할 때, 국가는 안전을 판돈으로 건 도박을 한다. 그 도박의 이름은 ‘편집’이다. 편집의 오차가 커질수록 비극은 가까워진다. 우리는 작은 비극의 씨앗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체르노빌’이 공포스러운 이유는 이것이다. 진실의 사소한 편집이 얼마나 흔히 일어나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의 곁에서 마음을 지켜내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