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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Aug 17. 2019

시니컬한 질문과 담담한 대답이 보여주는 것

브로드컬리 5호,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브로드컬리 매거진 5호의 주제를 보고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이 잡지가 로컬 가게를 테마로 하는 인터뷰집 시리즈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시리즈는 직장인 가슴 설레게 하는 퇴사 썰로 가득한 어마어마한 퇴사 뽐뿌 매거진이다.


도발적인 제목에 끌려 샀던 3호, 그저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 이유로 충동구매했던 4호 모두 자기 주관 확실한 퇴사맨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덕분에 별 마음의 준비 없이 그 이야기들을 읽어 버린 나는 매번 퇴사 번뇌기를 겪어야 했다. 5호의 주제가 대놓고 '퇴사'라니, 자연스러운 걸 넘어서 날로 먹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브로드컬리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따르면, 5호에 이르러 브로드컬리 매거진은 드디어 '책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5호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5호를 구매하러 종로~을지로 부근 책방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놀랍게도 모두 품절이었다. 책을 발간하자마자 2쇄를 넣었다는 '카더라'도 들었다.


분명 브로드컬리 매거진 5호는 나름대로 흥했다. 이제 브로드컬리 시리즈가 어떤 일관된 정체성과 브랜드를 확립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특유의 뉘앙스는 5호에서도 여전했다. 냉소적이지만 그래서 통쾌한 부제의 어조는 본문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좀 무례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직설적인 질문,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 질문을 받아치는 더 '쎈' 답변들. 브로드컬리 편집부가 만난 모든 인터뷰이가 쏘쿨한 직구형 인물일 리는 없으니, 이건 편집부가 의도한 문투라고 본다. 사실 질문에 계속 반복되는 '~했나?'라는 어미를 '~하지 않으셨어요?' 정도로만 바꿔도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나는 이 매거진이 어째 츤데레 같다고 느낀다.


가게를 하겠다고?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 좋아하는 것을 팔겠다고?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비싼 재료를 가져오거나, 모든 시간을 가게에 쏟거나, 제한된 수량만 팔겠다고? 그런 꿈 같은 소리 할 거야? 그래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좋아하는 일 하면 행복할 것 같아?


삐딱해 보이는 질문을 잔뜩 쏟아 놓고, 가장 도발적인 말투를 선택하고, 그래 놓곤 그 냉소적인 질문에 더 단단하게 받아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브로드컬리 매거진 인터뷰이들의 답변은 '응, 힘들어. 힘든 거 알고 시작했고, 어쨌든 지금이 더 맘에 든다.' 정도로 뭉뚱그릴 수 있다.

절망의 탈을 쓴 희망. 아주 뜨겁지는 않은 미지근한 희망. 달콤한 설탕옷을 입은 쓴 약이 아니라, 쓴 약인 척 하지만 실은 달콤한 희망 한 조각을 품은 디저트. '너무 절망하지 말고 너무 낙관하지 말라'고 담담하고 쿨한 척 하면서, 실은 하고 싶은 거 하는 삶이 진짜라고 믿는 낙관주의자들. 내가 느낀 브로드컬리 매거진을 표현하자면 이 정도다.


이제 브로드컬리가 '퇴사' 다음으로 들고 나올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게 뭐든, 나는 시니컬한 척 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이 시리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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