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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Nov 27. 2019

지금-여기를 지탱하는 위대함

'겨울왕국2', 두 가지 삶

※ '겨울왕국2' 스포일러 매우 많습니다.




제목은 ‘겨울왕국2’이고 원제 역시 ‘프로즌2’지만, 영화의 배경은 가을이다.  시리즈의 제목이 ‘프로즌 이유가 단순히 얼음과 눈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즌 시리즈의 이야기는  얼어버린(frozen) 것으로부터 시작해 그것을 녹이며 끝난다.


엘사와 안나가 각각 상징하는 것은 명확하다. 차가움과 따뜻함. 이성과 감성. 내성적이고 성찰적인 인간과 외향적이고 즉흥적인 인간. 얼리는 사람과 녹이는 사람. '겨울왕국' 투톱 체계인 이상 이 영화는 어쩔  없이 다소 이분법적인 가치 체계를 택하게 된다. 크리스토프와의 러브라인은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에야 진행되는 부차적인 이야기에 불과하고, 올라프는 어디까지나 엘사와 운명을 함께한다.



얼음은 언제나 차갑고 날카롭고 깨끗한 것을 뜻한다.  것은 썩지 않는다. 동결된 것은 시간을 멈춘다. 얼음은 인간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반면 인간의 세계는 따뜻하다. 시간이 흐르고 뭔가가 자라고 썩어간다.  차이를 본능적으로 아는 엘사는  고독에 시달린다. 얼음의 계절을 녹여 봄으로 만들어야만 엘사는 겨우 인간들의 여왕이   있었다. 하지만 엘사는 엄연히 봄이 아닌 얼음에 속한 존재. 자신이 여전히 남들과 다르다 느끼던 엘사는 결국 '목소리' 응답하고 만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단풍옷으로 갈아입듯, 엘사와 안나도 이번 영화에서 '' 갈아입는다. 이번 탈바꿈은 1편에서  걸음  나아가야만 한다. 각자의 본령으로  발짝  다가가는 변화여야만 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는 1편을 상기시키려는 것이 분명한 엘사의 변신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때 엘사의 표정은 1편의 자신만만한 미소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환희와 울음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원하던 결말이다.



엘사가 지도의 가장자리로 자신의 자아를 찾아 떠난다면, 안나는 지금-여기, 사건의 한가운데에 남아 절망을 버텨내고 ‘지금 해야   한다. 안나의 강인함이 유독 돋보이는 대목이다. '겨울왕국2'에서 안나는 내내 인물들의 중심부에 있다. 표면적으로는 여왕이자 강력한 능력을 지닌 엘사가 두드러지지만, 정작 영화 내내 우물쭈물하는 엘사를 다독이고 이끌어내고 격려하는 것은 안나다.


엘사는 엘사의 방식대로, 안나는 안나의 방식대로 따로 또 같이 모험과 성장을 이뤄낸다. 누구의 길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리더는 무리의 한가운데에서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두 자매는 각자에게 진정 맞는 자리를 찾아간다. 엘사는 그토록 바라 왔던 정체성과 자유를 찾는다. 안나는 아렌델의 대표로서 중대한 결정을 해낸다. 진정한 지도자로 거듭난다. 그렇게 엘사와 안나 모두 ‘옷을 갈아입는다’. 이렇게 ‘겨울왕국2’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삶이 각각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엘사를 보면 누구나 울컥하지 않을까? 모두들 엘사 같은 삶을 바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가 보고 들어온 동화들은 모두 모험을 이야기했으니까.


하지만 땅에 두 발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안나의 묵직함을 동경할 수밖에 없다. 현실 속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안나와 닮아 있다. 남아서 이곳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나가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삶의 위대함.


영화 속 안나가 멋져 보였다면, 더 이상 떠나지 못하는 것을 ‘용기 없음’으로 치부하지 말자.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인내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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