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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Oct 14. 2019

다음 텀블벅은 이렇게 안 해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 펀딩일지 (3)

폭풍같은 일정이 끝나고 정말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 뭔가를 써 본다. 본격적으로 책과 리워드 주문을 넣기 시작한 펀딩 중반부부터 배송을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조금의 짬도 나지 않았다. 펀딩 과정을 연재해서 펀딩 홍보 효과를 겸해 보고 싶은 흑심이 있었는데 역시 인생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


열이틀간의 몽골 여행기,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 펀딩 링크

https://tumblbug.com/mongolianmilkyway


중간에 생각보다 펀딩이 잘 된다고 글을 올렸다. 올리기가 무섭게 모금액 증가 추세가 꺾였다(...) 결국은 내가 아는 '그 그래프'가 됐다. 처음에 급 상승하다가, 한동안 침체기를 겪고, 마지막에 잠깐 버프를 받는 그래프.


내게 과분한 결과인 건 마찬가지다.


텀블벅은 처음이라 이것저것 찾아보고 다녔는데, 의외로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글이 많이 없었다. 나중에 나도 다시 찾아볼 겸 이번에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1. 모금액 입금일을 확인하자.


텀블벅의 경우 펀딩 종료일로부터 일주일 동안 후원금을 '집금'한다. 집금이란 개별 후원자가 등록한 결제수단을 통해 후원금을 '결제'받아 모으는 것을 뜻한다. 결제수단에 오류가 있어 다시 결제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간을 넉넉하게 일주일로 잡아 둔 것이다. 후원금이 실제로 내 계좌로 입금되는 건 집금일로부터 7영업일 뒤다. 그러니까 최소한 펀딩 종료 후 16일 뒤에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문제는 생산 일정이다. 생산업체에 돈을 나중에 지불해도 된다면 상관없지만, 먼저 지불해야 한다면 후원금 수령일과 생산비 지급 날짜 간에 시차가 생겨 버린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중간에 내 돈으로 먼저 생산비를 충당하든가, 후원금을 받고 나서 생산을 진행하는 일정으로 미리 공지를 해 두든가.


후원금을 받고 나서 생산하는 게 부담도 없고 안전하지만 배송이 너무 늦어진다. 후원자가 거의 한 달 뒤에야 물건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 돈으로 먼저 생산을 진행해 버리면 일단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물론이고, 펀딩 규모가 본인의 예상을 벗어났을 때 난감해진다.(물론 예상보다 너무 잘 된다면 좋은 일이긴 한데...) 그리고 '펀딩'이란 생산할 자본은 없지만 아이디어가 있으니 도와 달라고 진행하는 건데, 사실 생산할 자본이 있는 거라면 펀딩이 아니라 그저 선구매 신청을 받았을 뿐 아닌가? 하는 미묘한 문제도 있다.


나는 적금을 깨서 미리 생산을 진행했다. 그리고 집금 완료되자마자 배송을 시작했다. 이게 맘 편하긴 한데, 후원금 들어오기까지 마음이 많이 허했다.


2. 시행착오는 미리미리.


난 내가 다 해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생산에 들어가려고 보니 남은 과정이 너무 많았다. 손수건도 생각보다 남은 시행착오 과정이 많아서 고생 꽤 했고, 엽서도 뒷장을 안 만들어 놔서 생각보다 생산이 늦어졌고, 부록도 마지막까지 수정을 꽤 했다. 무엇보다 책 자체의 수정 기간이 내 생각보다 너무 늘어졌다. 그러니까 진짜, 진짜 여기서 최종 주문만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펀딩 프로젝트를 올리자.


펀딩 중에는 제품 개발에 집중하기 힘들다. 펀딩 홍보와 진행상황 공지를 꾸준히 해 줘야 하기 때문. 특히 직장인이면 더더욱 펀딩 기간 중에 해야 할 일을 미리 줄여 두고 시작하자. 회사도 바쁜데 펀딩 홍보도 챙기고 시안 만들고 샘플 만들고 일정 체크하느라 정말 토나왔다...ㅠㅠ


3. 리워드 종류는 최대한 줄이자.


리워드가 다양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야 펀딩 잘 되는 줄 알았다!ㅠㅠㅠㅠ


일단은 메인을 잘 만들자. 내 경우 '메인'이란 책이다. 펀딩을 시작할 때는 굿즈로 사람들을 현혹(!)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메인이 더 중요하다. 사실 당연한 건데 왜 처음엔 리워드를 다양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후원 선택지를 금액대별로 다양하게 구성하고 싶다면 메인 품목 갯수를 늘려서 구성할 수도 있다. 책 한 권, 두 권, 세 권, 이런 식으로. 리워드가 다양하면 준비된 사람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좀 많이 힘들다. 책 한 권만 제대로 만들기도 힘든데 무슨 정신으로 리워드 품목을 세 개나 넣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펀딩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리워드를 하나 뺄 거다.


품목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내가 들여야 할 품도 배로 늘어난다. 펀딩 자체가 생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이드잡으로 펀딩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제발 품목을 줄이자. 나중에 보니 물품 한두 종류만 있는 프로젝트도 꽤 많았다.


4. 펀딩과 행사를 맞물려 하는 건 좋긴 한데 감당하기 힘들다.


사실 나는 이번 펀딩을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딸려서 진행하는 작은 이벤트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작은?^^


그러니까 내 입장에선 배보다 배꼽이 상당히 아주 매우 커진 셈이었다.


펀딩을 굳이 8월 말에 시작한 것 역시 펀딩 종료일과 행사 날짜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펀딩에 '퍼블리셔스 테이블 현장수령' 옵션을 넣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행사 현장수령 옵션은 후원자와 직접 만날 수도 있고 피차 배송비도 아끼는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펀딩 종료일과 행사가 겹치면서 리워드 포장과 배송에 쏟을 시간이 그만큼 줄었고, 덕분에 며칠 밤을 폐인처럼 새고도 시간이 빠듯했다. 펀딩이 끝날 즈음이 얼마나 바쁠지를 간과했던 거다.


정리. 펀딩에 행사 현장수령 등의 옵션을 넣는 것은 좋으나, 날짜를 너무 붙이지 말거나 아예 하지 말 것. 어쨌든 펀딩과 행사 두 가지가 겹치면 각자 준비해야 할 것이 생겨서 일이 배가 된다. 본인이 시간 여유가 없다면 하지 말자.


5. 포장과 배송은 매우 큰 일이다.


이번 펀딩이 힘들었던 이유의 절반이 리워드 시행착오 때문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포장과 배송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포장재는 미리 사둬야 한다. 펀딩 후반부에는 시간이 매우 촉박하기 때문에, 제품을 바로 받아 포장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포장할지 구상해 두는 건 물론이고.


미련하게 고생을 사서 하는 나는 책을 종이로 일일이 포장해서 부록, 엽서와 함께 끈으로 묶는 초 노가다 포장을 선택했다. 물론 후원자가 50명 정도밖에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구상해 둔 포장이었다. 후원자가 50명을 넘어갈 때 알아서 비닐 포장으로 마음을 바꿨어야 했지만... 핸드메이드 어쩌구에 판타지가 있어서 결국 종이 포장을 했다. 며칠 밤을 새 가면서. 이러지 말자. 인력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면 OPP봉투로 싸는 게 최고다. 너무 아름답고 정성스러워 보이려고 하지 말자.


뚜벅이 회사원인 내게는 배송도 어마어마하게 큰일이었다. 웬만하면 미리 포장이나 배송을 손쉽게 해결하도록 고안해둘 것을 권한다. 업체에서 포장해둔 것을 배송업체로 바로 보낼 수 있게 한다든가, 아니면 아예 포장과 배송을 해주는 업체를 알아본다든가(펀딩 전문 배송업체가 있다!), 방문 대량배송을 해주는 업체를 미리 알아둔다든가. 우체국 방문택배나 대량배송에 대해서도 미리 잘 알아봐 두자. 이 모든 걸 미리 해두지 않은 나는 그냥 몇십개씩 직접 낑낑대며 들고 우체국으로 갔다. 반차를 쓰거나 점심시간에 뛰어가서. 하하. 멍청해. 하하.




지금은 배송도 거의 마무리됐다. 고생만 한 것처럼 쓰긴 했지만 펀딩 기간 내내 많이 행복하기도 했다. 정성스러운 후기를 보내온 분들도 계셔서 너무 감사하다. 무엇보다 이미 내 책을 받은 사람이 125명이나 된다. 이건 진짜 엄청나다. 초판 1쇄 제작부수가 50부였는데! 이제 남은 책들을 책방에 보내고 마켓에 데려가는 일이 남았다.


펀딩으로 많이 남았냐고 하면... 사실 남기는커녕 꽤 마이너스다. 대충 계산해 보다가 마음아파서 정확하게 못 했다.(...) 그래도 이번 개정판 제작의 목적은 돈을 버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를 아는 분들을 늘리는 게 내 목표다. 이번에 느낀 건데 텀블벅은 그 자체로 꽤 괜찮은 홍보 수단이다.


텀블벅에서는 창작자들을 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편이라 프로젝트 시작 전에 이리저리 문의해봐도 도움이 많이 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공개설명회에 갔는데, 펀딩 스토리 본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 잡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궁금했던 것들을 실제로 직원에게 물어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고. 펀딩 중 문제가 생겨서 메일을 보냈을 때도 빠르게 꼭 필요한 것만 해결해 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 생각해 보면 많은 펀딩이 성공해야 텀블벅 측에도 이익일 테니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는 것도 당연하다. 서로 윈윈 관계인 셈.


직접 내 것을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파는 사람이 된다는 건 참 묘하다. 자아를 분리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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