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Mar 12. 2020

합니다 북토크 넷이서

2020.3.11.

오늘은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 북토크를 하는 날이었다. 행사도 모임도 죄다 취소되는 시기라 조심스러웠지만, 참석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끝까지 취소하지 않은 분들이 있으니 나도 끝까지 하고 싶었다. 대신 집에서 나오며 여분의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챙겼다.


지난주에 내가 듣기로 참석자는 다섯 명이었다. 그 후에 지인이 또 신청한다고 했으니 여섯 명 됐으려나? 내게는 적당하다면 적당하고 많다면 많은 인원이었다.(결코 적은 건 아니라는 얘기)


대체 북토크라는 건 어떻게 준비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나처럼 대본을 일일이 써가며 대학생이 발표 준비하듯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집에서 피피티를 넘겨가며 연습하다 보니 대학생 때가 생각났다. 아, 나 지금 너무 학생처럼 준비하나. 지금껏 북토크 갔을 때 작가님들이 대본이나 큐카드를 들고 있는 걸 본 적은 없는데.



오랜만에 스토리지북앤필름에도 들를 겸, 카페에서 천천히 연습도 할 겸, 집에서 일찍 나왔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 들렀을 때가 겨우 네 시 반 정도. 태재 작가님이 시차 적응하러 나왔냐며 인사해 주셨는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니네요. 일산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게 오랜만이라 거리 감각, 시간 감각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꼼꼼히 따져보기 귀찮은데 지각은 절대 하면 안 되니 아예 일찍 나와버린 거, 어떻게 아셨지.


오랑오랑에서 커피를 주문하다 사장님과 딱 마주쳤다. 한껏 스토리지한 하루구나. 딱 라떼 한 잔 마실 시간만큼 대본을 보다가 스토리지워크룸으로 향했다. 뭔가 작업 중이셨던 사장님과 두 시간 동안 각자의 일을 했다.


면접 보기 직전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이 연습해서 툭 찌르기만 해도 달달 욀 수 있는데, 남은 시간을 다른 일에 쓰기는 불안한, 그런 기분. 사장님은 오늘 일부러 인원을 다섯 명으로 제한했다고 말씀해 주셨다.(정말요...?)


북토크 시간이 다가오자 한 분 두 분 워크룸으로 들어오셨다. 말 그대로, 한 분 들어오고 그다음에 두 분 들어왔다. 처음에 들어온 한 분은 모르는 분, 그 뒤에 들어온 두 분은 나와 독서모임을 함께해 온 지인들이었다. 어째 나머지 두 분은 안 오실 느낌이었다.


사장님께서 '삼십오 분에 시작할까요? 아니면 사십 분까지 기다리실래요?' 하고 물어보셨다. 삼십오 분에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차피 지금 올 분들은 모두 오신 것 같거든요. 그렇게 넷이서 함께하는 북토크가 시작됐다.(나까지 합쳐서!) 서로 멀리 멀리 떨어져 앉은 상태로.



생각보다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다들 내 얘기를 호의적으로 들어준 덕분이다. 이 대목에서 웃어 주셔야 하는데, 분위기 싸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했던 대목마다 여지없이 웃음이 터졌다. 걱정했던 것처럼 내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마치고도 거의 사십 분 정도는 수다를 떨었다.


사장님께서는 인원이 적어 내가 멋쩍어할 것 같았는지 계속 신경을 써주셨지만, 그런 건 정말 상관없었다. 저는 아무 기대도 없는 쭈구리인걸요? 오히려 다들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오늘 처음 뵈었던 독자 분께서는 책을 활발하게 소비하는 분이셨다. 기성출판물이든, 독립출판물이든 가리지 않고. 엄청 뭔가를 아는 척, 기성출판물과 독립출판물을 구분해서 말해놨는데 조금 부끄러웠다.


나를 딱히 ‘독립출판을 한 사람’이 아닌 ‘작가’로 생각하고 왔다는 말씀도 기억에 남았다. 나도 얼른 그 구분선을 지워야 할 텐데. ‘내가 어떻게 감히 작가예요’ 하는 마음은 사실 누구보다 철저하게 작가를 구별짓기하는 마음이기도 하지 않을까.


함께 독서모임 하는 지인들이 매번 내 책으로 모임을 하자고 해도 손사래를 치곤 했다. 내 책으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냐고. 그런데 오늘 보니 사흘 밤낮으로 이 책에 대한 얘기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나는 정말 사누별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내가 ‘이제는 책 표지를 봐도 아무 감흥이 없다’라고 말하자, ‘그거야말로 그 책에 모든 걸 쏟아부었고, 아쉬움이 없다는 뜻 아니겠냐’는 코멘트가 돌아왔다. 돌아와 곰곰 생각해 봤는데 그 말이 맞다. 이제 사누별에서 정말 손을 뗄 수 있게 됐다.




북토크도 마쳤으니 내일부터는 새로운 책을 작업할 차례다. 꼬꼬마 독립출판 제작자에게 워크룸을 빌려주신 자애로운 스토리지북앤필름에 다시금 감사를.


매거진의 이전글 티비를 켜면 가족이 모이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