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Mar 11. 2020

티비를 켜면 가족이 모이잖아

2020.3.10.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 학교에 다녔고, 대학생 때는 집에 너무 불규칙하게 있었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취를 했으니(그리고 텔레비전을 놓지 않았으니), 내 의지로 리모컨을 눌러보지 않은지 10년은 된 듯하다. 물론 요즘 보는 프로도 내가 선택한 것들은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매일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주말에는 이세돌이 나오는 예능을, 오늘은 타르트 카페를 운영하는 서민 갑부가 나온 교양 프로를 보았다. 이세돌이 지도다면기에서 보여준 진정한 강자의 여유와 선의를 제대로 곱씹어 보기도 전에, 서투른 시작을 성실한 현재로 굴려온 서민 갑부의 삶을 입력당해버렸다. 텔레비전은 정말 쉴 새 없이 인풋을 쏟아붓는다.


한때는 텔레비전도 경계해야 할 신문물이었는데,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니 텔레비전의 위상도 바뀐 모양이다. 어느 홈쇼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한 좋은 텔레비전’이라는 식으로 광고하는 걸 보고 격세지감이 들었다.


“와, 옛날에는 티비 바보상자라고 했는데.”

“티비를 켜면 가족들이 모이잖아. 스마트폰을 보면 뿔뿔이 흩어지고.”


엄마가 재빠르게 붙인 해설이 매우 간단명쾌하다. 하루이틀 생각해서 나온 인사이트가 아닌 것 같다. 어쩐지 조금 미안해졌다. 아직도 혼자만의 시간을 사수하는 데에 급급한 지밖에 모르는 딸내미라 미안. 하지만 저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다구.


어릴 때는 ‘텔레비전 없는 거실’을 꾸몄다는 가족 얘기가 뉴스에 나왔던 것 같은데, 이제는 오히려 화목한 가족의 필수품이 텔레비전이란다. 텔레비전이 다인용 스크린이라면, 스마트폰은 1인용 스크린이려나. 새것과 옛것이 대비되면 언제나 친숙한 옛것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내가 어릴 때 봤던 ‘텔레비전 없는 거실’에 가득한 것은 책이었는데, 사실 나는 그 모습이 좀 의아했다. 니가 교실에서 책만 읽어서 친구들이 다가오지 않는 거라는 소리를 들어 보셨나요? 독서야말로 철저한 1인용 활동, 고독의 끝판왕인데요. 다들 책이라면 무조건 좋다고만 인식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책은 무조건 좋습니다.(?)


날 때부터 텔레비전과 함께 자라와서 그런지 텔레비전, 하면 가족이 연상되긴 한다. 지금 방영되는 프로를 좋아하지 않아도 일부러 거실에 눌러앉아 있었던 적도 꽤 많다. 그저 가족하고 같이 앉아있는 시간을 위해서.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 기계가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될 줄은 몰랐겠지?


문득 요즘 어린아이들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도 두 손가락으로 확대해 보려 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내가 텔레비전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친숙함이 크듯, 그들 역시 스마트폰이나 그 외 IT기기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친숙함이 클 것이다. 어떤 새로움이든 언젠가는 보수적이고 친숙하고 익숙한 것으로 낡아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짝인다는 것은 흔들린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