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Apr 15. 2020

마감의 문

2020.4.15.

빨간 버스에 탑승해 자리 잡고 앉은 직후였다. 폰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떴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퇴근 직후 오는 연락이라니.


안녕하세요, 로 시작해 예닐곱 줄쯤 되는 메시지. 울음 이모티콘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었고, 정말, 깜빡, 혹시 같은 단어들이 눈에 밟혔다. 마감 기한을 깜빡했으며, 지금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당연히 예상한 일이었다. 일 분, 십 분이라도 봐주지 않고 단호하게 굴겠다고 각오도 했다. 충분히 공지도 했다. 그 모든 사전 작업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봐달라는 요청은 매번 새롭게 어렵고 난감했다.


한참 고민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안 된다고 답했다. 내 기준으로는 꽤나 빡빡한 대처였다. 상대방은 생각보다 순순히 수긍했다. 격한 분노를 예상했는데 오히려 미안해지고 말았다. 당연히 할 일을 했는데도 속이 쓰렸다. 폰을 주머니에 넣고 눈을 감았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며 거절하는 게 얼마나 마음 불편한 일인지 알았다. 누가 봐도 사소하고 안타까운 실수일 경우, 상황 봐서 마감을 슬쩍 늘려 주는 일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공공기관 사업의 본 목적이 누군가를 거절하기보다는 돕는 것임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한 번 발휘하기 시작한 ‘유도리’에는 선을 그을 수 없는 법이었다. 미리 공지한 기한과 기준들이 유명무실해지는 상황들을 몇 번이나 맞이한 후, 그리고 개별 요청들이 쌓여 업무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 후, 이렇게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나는 사람이지만, 업무를 할 때만큼은 거대한 신청 시스템의 문 역할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닫히기로 한 문이 자꾸만 열리는 건 결코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시스템의 일부로 생각하고 무 자르듯 6시 정각 이후에 낸 것은 받지 않는다며 인공지능처럼 구는 건 또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었다.


마감의 문을 지키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다. 새삼 마감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제출 불가 팝업창이 뜨는 대기업의 입사지원서 제출 시스템이 부러웠다. 0과 1로 딱 잘라서 기한 내와 외를 구분할 수 있는 디지털의 명료함이 얼마나 편리한 속성인지 알았다. 옳은 것이 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건 아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이라는 포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