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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May 23. 2020

'매일'의 함정

2020.5.23. 하다 말아도 괜찮다

3월 3일부터 오늘까지 약 세 달 간 달리기를 스물네 번 했다. 한 달에 여덟 번, 일주일에 두 번 뛴 셈이다. 이렇게 보면 달리기를 꽤 열심히 한 것 같다. 하지만 4월 28일에서 5월 17일까지, 약 20일 정도 아예 뛰지 않은 기간이 있다. 요즘은 달리기 안 하네, 라며 살짝 놀림도 받았다. 그 기간 동안 몸상태가 도루묵이 된 건 덤.


사실 하다 말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기간 동안 달렸던 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 운동량, 즐거움, 성취감이 어디로 증발해서 사라지는 거 아니고 다 내 몸에 남아 있으니까. 다시 하고 싶으면 언제든 다시 하면 그만이다. 하다 마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계속하는 게 대단한 거다.


처음부터 이렇게 느슨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원래 내게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뭔가를 하다 말면 '완벽한 기록이 깨졌다'는 좌절감에 영영 손을 떼 버리곤 했다. 특히 글쓰기가 그랬다. 그놈의 '매일 쓰기'가 뭐라고 매번 사람을 좌절하게 했는지...


하지만 다른 건 다 그만둬도 글쓰기는 절대로 그만둘 수 없었다. 덕분에 몇 번이고 '매일 쓰기'를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 하다 만 것이 이어져서 '계속한 것'이 되는구나. 돌아보면 참 꾸준히 뭘 끄적여 왔다. 이제는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다. 사실이니까. 잘 쓰지 못할 뿐.



영화 '패터슨'을 보면 패터슨은 시를 매일 쓰지는 않는다. 쓸 수 있고 쓰고 싶을 때 쓴다. 하다 말고 다시 하는 것이 이어져 패터슨의 노트는 빼곡히 채워진다. 패터슨은 그렇게 '계속 쓰는 사람'이 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패터슨을 시인이라 생각한다면, 그 근거는 '매일'보다는 '계속'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00하기'라는 목표를 세운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의지에 감탄하는 한편 조금 걱정한다. '매일'은 흐트러지기 너무 쉬운 목표인데 저 사람 괜찮을까? 부디 나보다는 탄탄하고 유연하게 본래 목표를 지켜 나가길.


'매일'보다는 '00하기'가 더 중요한 목표인데 나는 너무 자주 그걸 까먹고 '매일'에 집착하곤 했다. 그 짓을 정말 몇 번씩이나 반복하고 나서, 이제는 뭐가 더 중요한지 스스로에게 상기시킬 줄은 알게 됐다. 나는 앞으로도 간헐적으로 달릴 거다. 달리다가 별로면 안 달릴 거다. 또 운동이 필요하면 다른 걸 찾을 거다. '매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몸의 활력을 지키는 게 중요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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