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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Jun 23. 2020

작가라면 작가지만 아니라도 상관없어

20.6.23.

독립출판을 시작하고 나서 누리게 된 가장 큰 호사는 무엇보다도 ‘작가님’이라는 호칭이다. 가끔 황송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굳이 그렇게 부르시지 말라고 하는 것도 과잉 대응이다. 내가 글을 써서 독립출판물을 만든 것, 책방에 입고한 것, 팔고 있는 것 모두 사실이니까.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는가? 괜히 손사래를 치고 싶은 건 ‘작가’란 무슨 명작을 써낸 선생님들께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내 안의 꼰대 때문이다. 작가라는 말에 과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도 꼰대짓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볼 때마다 곰곰 생각하게 된다.


‘저것도 작가라고.’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없나? 작가라고 하면 완벽한 맞춤법을 구사할 줄 알고 쓰는 문장마다 새로운 통찰을 담아낼 수 있어야만 하나? 회사원이 일을 잘 못한다고 해서 회사원이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그저 일을 잘 못하는 회사원이 될 뿐. 그 사람이 회사원인지를 결정하는 건 업무능력이 아니라 고용 여부다.(업무능력이 장기적으로는 고용 여부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렇다면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이라도 작가일 수는 있다. 다만 글을 못 쓰는 작가일 뿐.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작가인지를 결정하는 건 뭘까? 쓰는 행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간단하다. 글을 쓴다면 작가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쓰는 모든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정의를 무한히 넓혀 생각하는 관점은 감동적이지만 좀 기만적이다. 다들 매일 SNS나 채팅창에 뭔가를 쓰지만 그것만으로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기본적으로 자기가 쓰는 것이 ‘글’이라고 의식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쓰는 행위’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조건이다.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글은 일기에 불과하다. 글은 읽혀야 글이다.


작가라는 호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자신을 소개할 때 명사보다 동사를 쓰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가수입니다’가 아니라 ‘노래합니다’라고, ‘패션 디자이너입니다’가 아니라 ‘옷을 합니다’라고, ‘교수입니다’가 아니라 ‘공부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신분보다 행위에서 본질을 찾는 사람들. 언젠가 그럴 만한 일이 생긴다면 명사 ‘작가’ 말고 동사 ‘씁니다’로 나를 소개할 거다. 석경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크, 괜찮다. 자기소개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어디든 불러 주세요.


‘저것도 작가라고’라는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타격을 줄 수 없다. 나는 작가라면 작가지만, 아니라도 상관없다. 작가이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싶고, 언젠가는 글로 먹고살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 이런 나를 작가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혹시나 누가 ‘그런 걸 쓰면서 작가냐’라고 한다면 조금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건 내가 작가의 이름에 누를 끼쳐서가 아니라 내 글이 저 사람을 재밌게 해 주지 못해서다. 나는 그저 어제보다 오늘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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