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 Apr 14. 2024

소진되지 않고, 고이지도 않고

2024.4.14.

가끔 비슷한 업에 종사하는 선배들의 삶을 보면서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글 쓰는 직업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소진되지 않고, 고이지 않고 글 쓰는 직업인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어느 미팅에서 '이 일(에디터, 기자 등 텍스트 콘텐츠 만드는 업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직을 잘 하지 않고, 일단 퇴사부터 저지르는 경우가 많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다들 너무 지쳐서 일단 쉬고 생각한다는 경우가 많다고. 나 역시 전 직장을 나온 이유 중 하나가 '너무 지쳐서'였기 때문에 공감이 갔다. 회사를 옮기는 사이에 한 달 쉬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냥 그 한 달 쉬고 싶어서 이직한 거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좀 만신창이였다.


새로운 회사에 와서 느낀 건 그동안 내가 일과 나를 너무 일치시킨 상태로 살아왔다는 거였다. 내 모든 삶은 기사를 더 잘 쓰기 위한 거였다. 좋은 기사로 호응을 받는 데서 오는 희열이 삶을 지탱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 나는 아직 역량을 증명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아주 잠깐이나마 '일=나=도파민'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되자 생각보다 무력감이 들었다. 나의 자존감은 다 업무효능감에 기반하고 있었구나. (참고로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고 나 혼자 조바심내는 거 맞다) 


사실 일과 나를 일치시키는 건 나에게 너무 당연했다. 그러려고 이 일 한 거라고요. 다만 회사는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일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면, 나중에 내가 너무 텅 비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 밖의 세계를 키워야 한다. 글을 쓰든 운동을 하든 모임을 하든 탄탄한 나의 세계를. 역설적이지만 글을 계속 쓰려면 글에 나를 아주 조금 덜 쏟아야 한다. 아마도 운동? 아마도 뉴스레터? 아마도 독립출판? 뭐든 해 보자. 생산적이지 않아도 되니까.


소진되지 않을 정도로 선을 지키지만, 고이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것...

여전히 이게 과제인 7년차 직장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