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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Apr 28. 2019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히어로

어벤져스와 반지의 제왕의 공통점

※ 「어벤져스:엔드게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벤져스:엔드게임」 (2019)의 후기에서 그리운 이름을 많이 본다. 그건 바로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2003). 판타지 영화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이 영화가 히어로 영화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된 어벤저스 시리즈 마지막 영화의 후기에 자꾸만 소환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다. 정확히 말하면 두 작품이 비교되는 순간은 거대한 규모의 전쟁 씬이다.


잠시 묻고 싶다. 십육년 전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전쟁 씬과 이번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전쟁 씬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느냐고.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 모란논 전투


혹시 규모에 대한 순수한 전율 말고도,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한때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영웅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지는 않았는가. 황혼은 빛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지만, 그 빛이 사라질까 가장 초조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중원의 황혼, 원년멤버들의 마지막 전성기


호크아이가 들고 뛰던 건틀릿은 차세대 영웅들의 손으로 건네진다. 차세대 영웅들은 눈부시게 단합하며 젊음을 뽐낸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이 영화에서 아무리 빛난들 이것이 마지막이다. 아주 두꺼운 판타지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가 이미 읽은 페이지보다 줄어들 때의 초조함. 관객은 그 안타까움과 매혹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서사의 완성도와 관련없이 모두가 「어벤져스:엔드게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영화는 개봉하기도 전에 사랑받을 팔자를 타고났다. 이 영화의 인기요인은 영화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야기의 대단원, 우리가 사랑했던 영웅들의 마지막 전성기라는 것.


반지의 제왕은 결국은 주인공이 승리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쓸쓸하다. 반지의 제왕뿐 아니라 톨킨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만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반지전쟁이 사실은 중원의 마지막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가장 빛나는 존재인 엘프들은 이미 그 땅을 떠났고, 인간들 역시 과거만큼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한다. 반지의 제왕은 서서히 빛이 꺼져가는 시대의 이야기고, 그래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떨치지 못한다.


「어벤져스:엔드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마블의 차세대 영웅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분석은 넘쳐난다. 캡틴 마블을 비롯한 여성 영웅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에는 나 역시 가슴이 뛴다. 기존에 '소수자'라고 불렸던 이들이 히어로로 등장하는 일은 희망적이다.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1세대 마블 히어로들과 관객이 쌓아 온 시간과 추억이 더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팬들의 첫사랑이다. 그 은퇴 무대가 화려할수록 쓸쓸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때 영화를 보던 꼬꼬마 자신이 함께 떠오르지 않는가. 어벤저스는 이제 우리 세대 집단기억의 일부다.


첫사랑에게 주고 싶은 이별선물,
이 영화가 팬픽션이 되어버린 이유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보내줘야 하는 첫사랑들을 위해 최대한의 서사를 할애한다. 영화의 설정을 붕괴시키면서까지 캡틴 아메리카에게 개인으로서의 삶을 돌려주는 결말을 낸 것은 그런 넘치는 애정의 결과로 이해된다. 시리즈 내내 고독하고 고결한 리더의 자리를 지킨 캡틴에게 모두가 주고 싶은 선물. 오류가 나더라도 스크린에서 실현하고 싶었던 장면. 그 서사를 감수할 정도로 관객들이 캡틴을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절대 개별 영화로 읽으면 안 된다. 메타적으로 읽어야만 이해되고,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


캡틴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이 그의 헌신에 대한 보상이라면, 아이언맨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은 히어로로서 그의 완성이었을 것이다. MCU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린 영웅이자 MCU의 인기를 견인한 일등공신. 인피니티 사가는 결국 평범한 사람 토니 스타크가 우주의 운명을 건 싸움에서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되기를 택한다. 이건 절대 엔드게임의 흥행을 아이언맨에게 묻어 가려는 시도가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내용물이 어떻든 사랑받기로 예정된 영화다. 주요인물의 기존 인기에 휘둘릴 수준이 아니다.


블랙 위도우에 대한 대우는 불만스럽다. 블랙 위도우의 솔로 영화가 좀더 일찍 나왔다면 아마 그녀를 위한 선물도 좀더 성의있지 않았을까. 어벤져스는 결국 상업 영화다. 그러니까 블랙 위도우의 결말은 그동안의 비중의 균형을 맞춘다기보다는, 그동안의 비중을 반영하는 정산으로 이해해야겠다. 누구보다 어벤져스라는 가족을 위했고, 스스로의 목숨까지 희생한다는 서사는 충분히 더 인상적으로 풀 수 있기에 2% 부족했던 마무리가 더욱 아쉽다.


토르와 헐크에 대해서는 뒷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그게 아니라면, 특히 헐크는 정말 안습이다. 헐크의 솔로 무비도 인크레더블 헐크 이후로는 안 나왔지 아마. 심지어 지금과는 배우도 다르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 워낙 인상적이었던 토르가 이렇게 망가져 버린 건 조금 아쉽다. 1편에서 비중이 컸던 반대급부로 보이는데, 역시 앞 순서보다는 뒷 순서가 더 인상적인 법이다. 오히려 2편에서 캡틴과 아이언맨에게 비중을 주기 위해 1편의 주인공을 토르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예상하듯 MCU의 다음 시즌이 정착하는 건 매우 어려운 과제다. 물론 디즈니는 그조차도 해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일을 이 정도로(?) 벌려 두지는 않았겠지.


첫사랑은 대체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같이 가장 사랑했던 영웅들을 떠나보내는 동지다. 우리는 다함께 추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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