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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May 28. 2019

꼭 예전보다 지금이 성숙한 건 아니다

과거의 내가 더 잘하는 것도 분명 있었다

나이가 들어 예전의 결정을 후회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예전보다 지금이 항상 더 성숙한 사람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나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과거의 내가 더 잘하는 것도 분명 있었다.


지난 주말, 음악 페스티벌에서 친구들과 셋이 찍은 사진을 보며 사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찍은 사진에서의 우리 모습이 더 어리고 풋풋했을진 몰라도 지금 우리는 사진을 예쁘게 찍는 방법도 알고 폰카도 더 좋아졌고 그래서 더 예쁜 사진을 찍을 수가 있네. 그때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나중에 보면 더 나은 방법이 있는 법인가 봐.


회사 선배님이 툭하면 내게 하시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어릴 땐 모른다니까요. 나중에 보면 다 부질없었어. 이건 내 퇴사 욕구를 말하는 거다. 네가 더 나이 들면 지금 이렇게 징징대는 게 어리석었단 걸 깨달을 거란 얘기다.


그렇다면 어린 나는 더 나이 많은 나보다 항상 부족한 걸까. 아니.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갖고 있던 뭔가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닌 친구에게 긴긴 편지를 쓰며 꼭 한 문장 정도에는 내 진짜 마음을 열어 놓던 것.


너는 늘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이 멋져.
너는 조용해 보이지만 생각과 주관이 뚜렷한 사람 같아.
너는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하게 돼.

그런 너를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지금, 자존심만 훌쩍 자라 버린 나는 절대 남을 향해 쓸 수 없고 건넬 수 없는 문장들. 그런 것들이 고등학생 때의 나에겐 있었다. 누구든 내게 없는 멋진 것들을 하나쯤 지니고 있어서, 누구 와든 좀 더 친해지고 싶고, 그래서 생일선물을 핑계로 마음을 전해보고 싶었던 때. 지금은 흔적만 남아버린 수줍음.


마음의 여러 요소들을 다각형 그래프로 그린다면, 내 그래프는 늘 올라운더형이라기보다는 한쪽으로 뾰죽 치우친 고깔모자였다. 그 넓이는 늘어나기보다는, 그때그때 다른 모양새로 기울어져 왔다. 오 년 전, 십 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모자란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내게 없는 것도 분명 지니고 있었다.


그래프 전역을 채우는 완벽형 인간이 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조그만 다각형일지라도 모든 축의 수치가 비슷한, 균형 잡힌 인간이 되고 싶다. 인정해야 한다. 내 인생은 그래프의 절대적 넓이를 넓혀 가기보다는 균형을 맞춰 가는 시간에 가깝다는 것을.


그러니까 과거의 나를 무시하지도, 지금 내가 내린 결정을 미래의 내가 비웃지는 않을까 걱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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