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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May 31. 2019

내 무대뽀 성깔을 믿는 것

그래서 뭐 써야하냐고...

고무나무가 유난히 잘 자란다. 무섭도록 자라던 아이비는 잎이 까맣게 타기 시작했다. 여름이다. 이번 여름엔 7월에 가족여행 가는 것 외에는 놀 계획이 따로 없다. 일할 거다.


회사 일도 독립출판도 성에 차도록 해보고 싶은데 체력이 부족하다. 영양제 먹으려고 생각만 하고 맨날 까먹는다. 매일 아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 출근하고, 얼른 퇴근해서 글 작업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하며 소 질질 끌려가듯 일한다. 나는 과연 의욕적인 인간인가 무기력한 인간인가. 이렇게 양극단의 모습이 하나라니. 대체로 나는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며 방구석을 뒹굴거리는 아메바다.

오늘 저녁 문득 집을 돌아보니 읽을거리로 포화 상태였다. 문가나 책상 아래에 널브러진 일간지, 책상 위나 책꽂이 구석에 대충 쌓인 주간지, 도서관에서 5권 만땅으로 빌려온 책들, 그저께 종로-을지로 서점을 돌면서 사온 책들, 요즘 듣는 에코페미니즘 수업 유인물, 예전에 사 두었으나 읽지 않은 책들, 이북 안에 들어 있을 세계문학전집, 핸드폰 안에 내가 저장해 뒀을 수많은 링크와 캡처들. 구글드라이브에 끌어넣어둔 논문들. 최근 내 실천력이 의욕을 얼마나 못 따라잡았는지 보여주는 종이 더미들.


어제 교보문고에 갔을 땐 나도 모르게 포기하는 마음이 됐다. 이렇게 쏟아지는 새로운 텍스트들을 난 절대 다 읽을 수 없다. 모든 걸 완독할 수는 없고 그냥 내가 관심을 둔 것이라도 덕후처럼 파악하는 게 최선이다. 이게 맞는 거 같다. (근데 솔직히 핸드폰 보는 시간만 줄여도 일주일에 한 권은 더 읽는다.)

요즘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내게 비슷한 말들을 한다. 포기하고 적당히 사는 게 맞는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아닌 걸 어째. 인생은 누가 말리든 말든 다들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돼 있다. 지금 회사에 들어온 지 벌써 2년 반인데, 그동안 깨달은 건 성깔대로 안 살면 주변 사람한테 징징대며 민폐나 끼친다는 거였다.


퇴사를 생각하던 초반에는 ‘여기에 영원히 있을까 봐 두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은 그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다. 내 무대뽀 성깔을 믿기 시작했달까. 삶에 큰 미련은 없고 그냥 나도 한 번쯤은 내가 보기에도 신박하고 퀄리티 좋은 뭔가(아마도 책의 형태)를 하나쯤 만들어 놓고 가고 싶을 뿐인데, 언젠가는 할 거 같다. 가장 두려운 건 가끔 글 안 쓰고 게으르다 싶을 때.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김보라/북저널리즘에 이런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 책이 맘 잡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진짜 고민은 공적 글쓰기에 대한 것.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남에게 무슨 말을 전하는 건데, 난 여전히 어떤 태도로 글을 쓸지 못 정했다. 요즘 읽는 책 ‘청년, 리버럴과 싸우다’가 회색분자에게 팩폭하는 내용인데, 이걸 읽으니 더 생각이 많다. 너도 맞고 나도 맞아요 따위의 태도는 진짜 합리적이고 중립인 게 아니라 실제로는 편파적이고 비겁한 태도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남에게 단언하냐... 물론 그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냐...


그래도 나는 뭔가를 쓰겠지. 틀릴 각오 하고 최선을 다해 쓰는 게 정답일 수밖에 없다. 나는 탈정치적인 글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를 변화보다는 현상유지에 머무르게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분명 독립출판 덕분이다. 그게 아니면 혼자 몰래몰래 쓰다가 어디 슨생님 같은 분들이 보고 상 주시면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나 했겠지. 아주 안일하게 뭘 쓰는 둥 마는 둥 하고 있겠지. 북페어에 나가 보니 재밌는 책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가장 재밌는 건 늘 가장 솔직하고 구체적인 얘기에서 나온다. 물꼬를 트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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