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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Jun 06. 2019

여행 에세이의 부끄러움

여행 에세이 독립출판, 그 후

나는 여행 에세이가 아주 어려운 글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 버렸다.


작년 말 독립출판 워크숍을 들었다. 한 달만에 책을 완성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두 가지 콘텐츠를 두고 무엇을 책으로 만들까 고민했다. 하나는 취준생 시절 썼던 일기였고, 다른 하나는 몽골 여행기였다. 촉박한 시간 내에 그 내용을 제대로 검수해서 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결국 몽골 여행기만 세상에 내놨다. 별로 문제 되지 않을 무난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때 내가 틀렸다는 걸 자꾸만 상기하게 된다. 몽골 여행기야말로 고민에 고민을 더해 오랜 시간 다듬어 내야 하는 글이었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밤마다 이불을 차지는 않았을 텐데... 최근 읽은 글들은 그야말로 내 마음을 콕콕 찔러댔다.


'몽골의 푸른 하늘, 그 아래 쓰레기로 가득했다.' 한겨레 기사의 제목을 보자마자 철렁했다. 내가 그토록 찬양했던 넓은 초원이나 사막, 게르는 사실 몽골인들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시골일지도 몰랐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그 사실을 아예 몰랐던 건 아니었다.


게르촌 대부분의 가정은 별도의 부엌이나 위생 시설(세면, 변기 등)이 없어 아이들이 세균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난방시설도 없기 때문에 화덕을 주로 사용합니다. 어린아이들이 화덕에 몸을 데이는 일도 빈번합니다. (중략)
몽골 아이들은 게르가 아닌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합니다. 한 아이는 게르에 사는 아이와 아파트에 사는 아이를 ‘냄새’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몽골의 푸른 하늘, 그 아래 쓰레기로 가득했다 (한겨레-월드비전, <119 희망 아이 캠페인>)


몽골 숙소의 직원들은 우리 일행의 가이드에게 수줍은 호감을 보이곤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가이드가 이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우리의 놀림에 가이드가 내놓은 해명 아닌 해명은, 본인이 나름 '도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와의 짧은 대화에서 몽골인들도 게르보다는 아파트를 좋아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행 막바지에는 몽골 수도와 가까이 위치한 관광지 '테를지'로 향했다. 테를지에는 현대식 건물이 많았고, 이곳저곳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있었다. 정말 자연 보존과 문명 개발은 공존할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초원에 군데군데 들어선 공사 현장은 결코 보기 좋지 않았지만, 동시에 몽골 사람들도 쾌적한 환경과 편리한 시설을 원하리라는 당연한 깨달음이 머리를 쳤다.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던 날 우리는 인도카레집에서 가이드와 드라이버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인도카레집의 밥값은 한화로 환산해도 한국에서의 물가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한국으로 와서 별별 노가다 일을 다 해봤다던 드라이버는 메뉴판을 보며 '정말 비싸다'고 헛웃음 지었다.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지만 아직도 그 모습이 선하다. 그의 눈에 내가 얼마나 한가하고 팔자 좋은 사람으로 보였을지.


마지막 날 울란바토르의 판자촌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결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누군가의 삶의 터전에서 나는 셔터를 눌렀다.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에 그런 짓을 하면서도 어딘가 죄책감이 들었다. 당연하다. 너무나 명백한 타자화 행위였으니까.


그러면서 무슨, 환경 운동가처럼 수세식 화장실과 쓰레기 처리에 대한 글만 잔뜩 써 놨는지. 그러면서 무슨, 세상의 가장자리 운운하는 판타지를 써 놨는지. 나야말로 내 모국보다 가난하고 아직 덜 개발된 국가에서 '원시의 생명력' 따위를 찾던 고갱의 후예였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1848~1903)은 “원시의 생명력으로 문명의 때를 깨끗이 씻겠다”며 1891년 프랑스의 식민지인 남태평양 타히티로 떠났다. 낙원 같은 풍경과 졸지에 ‘원시인’이 된 어두운 피부의 사람들은, 고갱의 눈엔 예술적 영감과 세속적 수입의 원천 그 자체였다. 이제 고갱은 ‘원시의 생명수’를 들이켜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곧 고갱은 타히티의 13살 소녀 테하아마나와 결혼했다. 당시 그의 나이 44살.

서구 남성들의 '이국 취미'였던 원주민 소녀 (이유리, 한겨레 2019.06.01.)


마음속으로만 부끄럽다는 문장을 써나가던 중, 여행작가 환타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자연환경과 자연식이 장수 비결이라고?’ 보통은 장수지역이라고 하면 문명과 뚝 떨어진 자연 속 마을을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곳은 홍콩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마도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어떤 신비가 존재할 것이라 믿는 방문객과 그런 욕구를 이용하려는 지역사회'가 일부 지역에 대한 장수의 신화를 만들어냈을 거라 지적한다. 실은 장수란 질 높은 복지정책과 건강보험 같은 지극히 사회적인 요소로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내용만 보면 영락없는 사회면 칼럼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여행 에세이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었다. 사실 이 글을 보기 전까지 여행작가 환타라는 이름은 알아도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다. 알고 보니 이름부터가 '환상을 타파하다'라서 환타. 여행하는 나라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글을 쓰며, 특히 여행지의 시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행 에세이가 가장 어려운 글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모르던 세계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묘사하는 게 아니라, 진정 이해하고 써야 하는 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의 나라란 얼마나 거대한 글감인가. 이런 엄청난 사실을 깨달아 버린 나는 과연 그동안 호언장담했던 대로 후속 여행기를 쓸 수 있을까.




http://www.hani.co.kr/arti/economy/biznews/894683.html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6224.html#csidxf52ee6c8d6bd149a0ae31d63d2ef8cc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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