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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Jun 11. 2019

사이드잡의 속도

느릴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기

6월이 되자 5월 내내 몰아치던 일정들이 좀 정리됐다. 지난 주부터는 미뤄뒀던 작업을 조금씩 시작했다. 일단 여행기 개정판 작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너무 괴롭다...) 이때다 싶어 집과 카페를 오가며 글만 봤더니 글씨 멀미 상태가 됐다. 오늘 퇴근하고 나서도 밥 먹고 나서 책상에 앉았지만 도무지 뭘 읽고 쓸 마음이 없었다. 분명 다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어째서 이 순간만큼은 이렇게 하기 싫은가.


내가 성실해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의 마음과 비슷하다.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수업을 듣는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자습하는 시간으로 가정하는 마음. 딴짓을 하면 죄책감이 드는 마음. 그렇게 스스로에게 강제를 둬 버리면, 신기하게도 원래는 내가 먼저 하고 싶어했던 일들조차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일이 된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매일매일 일정 시간 이상 글을 쓰는 삶인데, 그렇게 살면서 글을 쓰는 모든 순간이 즐거울 수는 없다. 매일 쓰다 보면 쓰는 게 즐거운 날도, 멀미가 날 정도로 싫은 날도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올해 안에 좀더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싶었던 나머지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은데 당연히 당장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으니 답답하고 툭 하면 부정적 감정에 빠져들 수밖에. 최근 영화 '패터슨' 후기를 쓰면서, 본업이 있는 시인 패터슨의 글쓰기가 자유롭다고 한 적이 있다. 글로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쓰고 싶지 않은 주제로 쓸 필요도, 쓰고 싶지 않은 순간에 쓸 필요도 없다. 지금 내 삶에서 글쓰기와 관련해 좋은 점이 있다면 그 자유로움뿐인데, 스스로 그걸 잊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따로 하는 일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장강명은 기자 일을 하면서 첫 소설을 '완성해 보는 데에' 3년이 걸렸다고 했다.(그 소설은 처박아 버렸다고 한다) 사실 기자 일을 하면서 3년만에 뭔가 자신만의 것을 별도로 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하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당장 회사를 다니는 상태에서 뭔가를 할 때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글쓰기가 '사이드잡'으로 머물러 있는 삶의 속도. 이 속도를 참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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