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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Jun 13. 2019

독립출판 하는 자의 자존감

내 것을 권하지 못하는 딜레마

퍼블리셔스 테이블 참가 셀러로 선정됐다. 기뻐서 동네방네 알리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지금껏 세 차례의 마켓에 참여해 보니 마켓은 정말 중요한 홍보 기회였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은 독립출판 마켓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이번 기회는 지난 세 마켓들에서처럼 어영부영 흘려보낼 수 없었다. 앞으로 계속 책을 만들 거라면 최소한 퍼블리셔스부터는 필명도 정하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꾸준히 홍보글도 올리고 명함도 만들어서 정말 나를 적극적으로 내보여야 했다.


하지만.

퍼블리셔스에 선정됐다고 내가 갑자기 글을 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닌데. 책을 만들고도 제대로 된 홍보 없이 미적거렸던 건 내 글이 부끄러워서였다. 아무래도 일이년쯤 더 글쓰기를 연습해야 할까, 너무 성급하게 책을 만들기 시작한 걸까, 하지만 이런 식의 태도로는 평생 책을 만들 수 없단 걸 안다.


나처럼 기성 출판물에 익숙한 사람이 독립출판을 할 때 깨야 하는 벽이 있다. 자꾸만 내 책을 기성 출판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내면의 시선이다. 오히려 주변의 사람들은 그저 내가 뭔가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을 추켜세워 줄 뿐, 내 책의 부족함에 대해 일말의 지적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좌절했다. 첫 책의 독자들은 대체로 나의 지인들이었기에 더더욱 속상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더 잘 쓴 글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사람들 앞에 내놓은 첫 책이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잘 쓴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독립출판물의 가치는 완벽하지 않음 그 자체에 있다.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묻어나고, 프로가 아니라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곳이 독립출판물이다. 이론으로는 내 책의 의미를 알면서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프로이고 싶었다. ‘뭔가를 해낸 것’만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현실을 자꾸만 거부했다. 그렇게 내 것을 권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가 조금 부족해도 나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작년 11월의 나에게도 면죄부를 주기로 했다. 매일 새벽 세네시까지 작업하고, 아침 출근길에도 핸드폰으로 원고를 확인했던 나날을 두고 어떻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소소시장에서 남은 재고를 모두 팔고 나서야 차근차근 책을 다시 읽어 봤다. 여전히 손봐야 할 부분이 잔뜩 눈에 띄었지만, 왠지 이번에는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개정증보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브런치 계정에 연재 중인 매거진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에는 나의 첫 독립출판물의 개정증보판 원고가 업로드되고 있다. 개정증보판 원고를 손볼 때 내가 세운 원칙은 세 개다. 읽는 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전후 맥락 설명을 충분히 채울 것. 몽골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룰 것. 몽골이 내게는 세상의 가장자리와도 같은 도피처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현실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책에는 블로그에 썼던 실용적인 팁을 부록으로 정리해 넣고, 몽골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책의 뒤편에 가득 첨부할 예정이다. 지금보다 많이 두껍고, 글씨는 좀 더 작아진 책이 될 예정이다.


퍼블리셔스 테이블 전까지 나의 목표는 개정증보판과 두 번째 독립출판물을 완성해 갖고 나가는 것. 이미 나의 책을 사 주신 분들 덕분에 나는 창작자로서 책임의식을 갖기로 맘먹었다. 이미 내 글을 돈 주고 팔아 버렸으니 내게 맘대로 글쓰기나 책 만들기를 때려치울 권리는 없고, 더 나아지는 것 말고는 독자들에게 속죄(?)할 길이 없다. 퍼블리셔스 테이블까지 세 달 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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