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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Jul 12. 2019

쓸 수 없는 소재

몇 년 전,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였다. 칭찬에 박하던 강사는 내 글에 나름 긍정적인 코멘트를 남겼다. 이 글은 소재만으로 토익 990점 만점에 950점을 먹고 들어갈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을 때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수강생들에게 내 글은 익명으로 공개됐지만,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뛰어서 고개를 들고 똑바로 정면을 응시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그 이야기를 읽는 상황 자체를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에세이를 팔아먹을 고민을 하는 직장인이 됐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비밀스러운 소재가 가장 특별한 소재라는 글쓰기 상식쯤은 잘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소재’를 생각할 때마다 바로 마음속 서랍으로 다시 집어넣곤 했다. 쓸 수 없는 소재였다.


나는 그 소재를 직시한 적이 없었기에 잘 알지도 못했다. 적극적으로 대면해 볼 자신도 없었다. 지금의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영원히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이런 찌질한 상태의 나를 보여준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됐다. 그런 글이 솔직할 리가 없었다. 한두 문장도 못 가서 온갖 말들로 나를 포장할 게 뻔했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소재’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내 모든 우울과 무기력의 근거인 그 ‘소재이자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파렴치하게도 나는 종종 좋은 글을 써내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문제가 외부 요인으로 종결되기 전에 나의 힘으로 해결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 나의 모습을 써내야만 진정 좋은 글이 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감히 생각한다. 불행을 전시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인가. 적어도 그만큼은 자기 불행을 인정할 수 있고 그 불행의 해결책을 글로라도 써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해결책을 상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 정도 인간인 지금의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 인간으로 머무는 동안 나는 절대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없단 걸 안다. 아마 평생 좋은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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