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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May 18. 2021

[회사생활백서 #23]회사에서 미친놈 취급받는게 최고

만만하면 건드린다

사람들과 말하다 보면, 오호랏.... 하는 표현들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예전에 브런치에도 썼지만, 아주대병원의 이국종 교수께서 그 유명한 자신을 [앵벌이]에 비유했을 때, 그 표현이 너무도 맘에 와 닿았다. 그 표현이 다소 거칠고 순화되지 않았지만, 결국 쓸모 있는 사람들을 쓸모없게 많드는 회사의 많은 정책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무리한 표현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지난주 우연히 동생과 얘기하던 도중에, 동생이 [회사에서는 미친놈 취급받는 게 최고]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꽂혔다. 잘 못 생각하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들리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고 월급 받으면서 생활하라는 말이다. 필요하다면, 몇몇 맘에 드는 동기들과 친하게 지내면 되겠지만, 그것도 과하면 무리가 있다.


업무 이외의 내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 없다. 몰려다닐 필요도 없다. 그런 인간관계가 회사생활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쉽다. 그냥 쓸데없는 곳에 내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할 뿐이다. 점심 먹고 좀 다른 일 좀 할라치면, 상급자의 호출이 있을 수 있고, 동료들이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고, 귀찮다. 한두 번 거절해보지만, 마음이 좀 내키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그냥 미친놈 취급받는 게 좋다. 그래야 건드리지 않는다.

설령 상급자들에게 '저 새끼 완전 개 똘아이야.. 멘탈갑이야..]라는 소릴 들을지언정, 적게는 사회성이 결여됐다고 들을지언정, 그냥 묵묵히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 점심도 그냥 조용히 유튜브나 보면서 말 안 하고 먹으면 되지, 사람들 우르르 모여 가봐야, 사람들 많은 경우에는 자리도 쉽게 나지 않는다.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하나하나 반응해 줘야 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내가 만만해 보이고, 항상 좋은 사람처럼 웃고 다니고 하다 보면, 속칭 파리가 꼬인다. 거절하기도 쉽지 않고, 싫은 소리 하기도 싫은데, 나한테 말을 안 걸어왔으면 하는데, 그런 예측은 보기 좋게 빚나간다.


'이건 누가 할까.. 김 과장, 좀 부탁해'

'김 과장님. 내일까지 이거 좀 해야 하는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 과장. 어제 보내준 거 자료 있잖아. 내가 출장이라서 그런데, 그거 자리에서 프린트해서, 부장님한테 좀 전달해줘.'

'김 과장, 나 대신 A회의에 좀 들어가 주면 안 돼?'......

'김 과장님 엑셀에서 이거 이거 어떻게 해야 하죠?. 김 과장님 파워포인트에서... 이거 이거.....'


마음 착한 김 과장은 피곤하다. 이제야 '내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으니, 어느덧 오전 시간이 다 지났다. 누가 내일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은 일대로 쌓여있고, 어디 보이지도 않는 남의 일만 잔뜩 해주는 바람에, 가십성의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바람에, 나의 에너지는 이미 고갈됐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으로 낙인 <?> 찍힐 필요 없다. 그런 업무적으로 엮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되어 있으나 없으나, 사실 회사생활에 별 차이가 없다. 근데, 나는 일이 없나? 나는 한가한가? 왜 자기들 손을 놔두고, 자꾸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지 모르겠다 싶으면, 한번쯤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를 만만하게 보고 저러는 거 아닌가........




우리 회사에 항상 무표정하게 있던 여직원이 한 명 있었다. 출근할 때, 인사도 안 한다.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는 하지만, 눈을 마주칠 일이 없다. 처음 이 여직원이 들어왔을 때는, 다른 선배들이 챙겨준다고 밥 먹는데 커피 마시는데 저녁 회식.... 에 마구마구 데리고 다녔다. 일을 가르쳐 준다고, 이일 저일 주면서, 해보라는 식으로 테스트하기도 했다.


물론 이 여직원도 처음부터 그런 [차도녀]와 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웃음을 잃더니, 웬만한 요청에는 칼처럼 자르기 시작하는 거다.


'그건 제가 할게 아닌 거 같은데요. ' '아뇨.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이런 일이 한두 번 쌓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위 말에 아웃사이더가 됐다. 근데,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맡고 있는 업무는 칼같이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와... 싸가지..] 해도, 뭐라고 못하는 거다. 즉, 좋은 사람도 아닌, 나쁜 사람도 아닌, 그냥 그렇게 있는 거다.


항상 되풀이 하지만, 회사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그에 합당한 월급만 받으면 되는 계약관계를 실현하는 장소에 불과하지, 그 안에서 나의 삶의 의미나 가치를 찾을 필요는 없다. 삶의 의미나 가치는 회사에서 번 그 돈으로 회사 밖에서 찾으면 된다.  지금의 50~60년생의 아버님 세대에서는 회사가 삶의 전부이고, 회사를 위해 내 몸 바쳐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은 헛짓이다. 그래 봐야 자기 회사도 아니고, 때 되면 조용히 나가야 한다. 회사는 그런 개개인의 하나하나까지 케어하지 않는다. 회사 생활하다 보면 속상한 일, 마음 아픈 일 억울한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마다 회사가 챙겨주는 것 봤나? 없다. 철저하게 이익창출을 위한 집단이다.  


마음을 나쁘게 먹고, 모든 반응에 적대적으로 대하란 말까지는 아니지만, 하기 싫은 것, 할 필요가 없는 것, 업무와 관련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긋고 회사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내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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