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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Nov 05. 2021

[회사생활백서 #27]뭘, 어쩌라고??

실현 불가능은 있을까.

대답은 심플하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그렇고 그런사람으로 찍히겠지만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된다. 좀 재미없고 심심하지만, 그 일을 그렇게 공들여 할만큼의 나의 의지는 강하지 않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이 월급 받으면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떤 일이 주어졌고, 그게 좀처럼 쉽게 달성되기 어려운 숙제라면, 안되는 이유는 10가지중에 9개의 이유는 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오랜시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주어져도, 그자리에서 안되는 이유를 순간적으로 5개이상도 말할 자신이 있다. 안되는 이유는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1개의 될지 모른다는 이유가 있다라고 한다면, 일단 9개는 제처두고 그 1개의 가능성을 최대한 크게 키워야 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실행해도 되지 않았을때에, 그게 외부적 요인이던, 아님 나의 자질문제로서 포기할 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




8년전의 일이다. 뜬금없이 나한테 중국시장개척이란 숙제가 떨어졌다. 밑도 끝도 없었다. 어떻게 할지 계획서를 1~3차에 걸쳐 제출하라고 한다. 1차 계획서의 제출기한은 1주일이였다. 일단, 그렇게 말하는 상사의 얼굴을 5초는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 뭘 어떻게 하라고?' '어쩌라고?'라는 나의 얼굴표정을 그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자기도 귀찮아 나한테 토스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접수했다. 이건 좀 내 성격인데, 그 앞에서 안된다는 얘기를 잘 하진 않는다. 그래도 회사의 녹을 먹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오랜세월 먹어온 사람으로서, 당장 그 면전에서 '안된다'라고 버릇없이 말하는건, 동양유교문화에 입각한 나의 올드한 마인드로 익숙하지 않았다. 쓰잘데 없는 것들.


그날부터 나에게 주어진 7일 중, 6일을 생각했다. 뭐 따로 적거나 하진 않았고, 그냥 생각만 했다. 뭘할까..를 대책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꿈을 꿔도 좋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도 좋다. 서점에 가서 중국시장관련 책은 한권 사봐서 읽어봤다. 때마침 상사에 다니는 친구의 조언도 2시간이나 들었다. 인터넷의 신문기사는 못봐도 수천건은 읽어본거 같다. 그렇다고 내 일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생각했다. 출퇴근시간 포함해서, 내가 마치 지금 당장 이 물건을 중국에 내다 팔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그리고 1차 제출기한에 나는 늦지않게 제출했고, 내용을 보완해 2차, 3차를 냈다. 소설같은 내용이 절반이상을 이뤘지만, 내 상사, 그리고 그 위에 어르신들은 뭔가 그럴싸한 내 기안에 흥미를 가졌는지, 실행에 옮기라고 했다. 그게 벌써 8년전 일이다. 대충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기안이란게 원래 소설이다. 그럴싸해야한다. 그렇게 하면 될 것처럼 하는거다. 같은 얘기라도 어떻게 포장하는냐에 따라, 내용물의 품격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매년 작성하는 목표달성..어쩌구도 다 소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의지? 가능성? 다음주가 다르고, 다음달이 다른데, 1년을 어찌 정확히 내다볼 것인가. 그럴싸하면 된다.


실제로 옮기니, 내 소설은 맞는 구석이 거의 없었다. 중국세관을 해관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는 정도 였으니, 모종의 관계를 암시하는 꽌시는 꿈도 못꾸는 것이였다. 그전에, 나는 중국어를 못했다.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인가.


처음부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말도 안된다고 항변을 할 수 있다면, 그런 분위기라면 해봐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고 얘기해도 괜찮다. 다만, 해보지도 않고, 부딪쳐보지도 않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9가지의 이유를 늘어놓기 보다는,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 있는 1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 하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성취감이 없는 일은 하기 싫다. 루틴한 업무도 그중에 하나다. 사실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일이 회사내에서는 꽤 많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보고를 2~3번에 걸쳐 하기도 한다. 시간낭비에 소모적일 일처리지만, 그냥 하는거다. 뭐, 딱히 이유는 없다.


그런 의미없는 일중에서, 그래도 내가 뭔가 성취감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래서 그 안에서 재미를 얻으려 한다면, 생각을 바꿔볼 필요는 있다. '내가 여기까지 해봤는데, 그래도 안되더라'하는건, 빨리 포기하고 다른일에 열중하는게 회사차원에서도 맞다.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는 제공되어야 한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의 맏아들이 소현세자는 청나라로 끌려간다. 나라는 거지꼴이 되었고, 뭘 할 수 있었을까 답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관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았고, 유럽의 학문을 익혔다. 식량도 자급하여 큰 부를 쌓았고, 그를 토대로 무역도 하며,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펼쳤다.


의외로 나자신에게 할 수 있는게 꽤 있다. 말도 않되는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탓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내 자신이 조금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조금 다른 세상이 보이는 보너스도 있다.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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