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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Oct 21. 2021

졸업앨범을 사지 않았던 친구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구매했던, 아니 구매해야만 했던 졸업앨범에 대해, 그 친구는 그 앨범을 사지 않겠다 선생님께 얘기했었다. 뭔가 당돌하기도 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할때도 앨범을 사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당시 그는 그냥 "별 필요없어서."라고 했다.


그래. 살다보니 사실 별로 필요없다. 필요없었는데도 그냥 그래야 하는 것만 같았다. 랬던 친구의 취미가 사진찍기라고, 기다란 렌즈가 달린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그냥 그랬었다.  특이한게 있다면,  친구는 사진이 취미면서 자신을 찍지 않는다. 사람을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찍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예전에는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나이들어  친구와 얘기를 하다보면,  친구의  철학이 나름 이해되고  공감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에 있어 추억은 그냥 쓰레기였다. 쓰레기라는 표현이 별로 적절치는 않아 보이지만, 그냥 쓰다버린 그 무언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야지, 뒤를 돌아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낭비라는 것이 큰 골자이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 말이, 20대에 들었을때 보다 40대에 들었을때가 더 와 닿았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며, 언제나 곱씹으면서 회상하면서 그때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에휴..생각해봐야 뭐하냐..다 지난것을..'이라고 휙하니 한쪽 구석에 처박혀 놓는 것임에도 틀림없다.


그리고 어느 센치한 새벽, 무심코 놓여있는 물건이나 사진을 보며,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공간, 만날 수 없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으로 올 때가 있다. 그럴때는 마치 그 기억을 내 머리에서 떼내고 싶은 생각마져도 든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 그의 충고와 조언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이건 내가 대학생때 필기해논 노트, 이건 내가 중학교때, 이건 고등학교때 내가 모아놓은 스크랩, 이건 군대에서 제대할때 가져 온 문구함...모든 물건에는 그 물건만의 추억이 있어, 나는 그런 물건을 쉬이 버리지 못했다. 버리지 못하니 붙잡게 되고, 미련이 생기며, 불필요한 나의 감정을 소모하게 된다. 없으면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 없어질지 모르는데 말이다. 아무리 조금한 것도 그 조금한게 모이고 모이게 되면, 번잡했다.


그리고, 사진이 그렇다.

그 옛날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에는, 24장짜리 필름통을 넣어 사용하는 카메라로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찍었지만, 지금은 우리 딸 사진만 만장이 넘는다. 이건 사진을 찍는 것인지, 그냥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무심코 셔터를 누르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바로 보지도 않고, 심지어는 1년이 지나서 확인하기도 하니, 그런 사진들만 휴대폰을 포함하면, 셀 수 없이 무수히 많다.


추억이나 기억은 아름답지만, 친구의 말을 들으니, 너무나 슬프기도 하다. 또한, 그런 추억은 그냥 나만의 것인 것을 영원한 것도 아닌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소중한 추억이 혹시 그냥 짐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영원이란 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소중히 사는 것이라 했다. 그런 식으로 있지도 않는 허상을 쫒을 시간에,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최선을 다하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옛 것은 버려야 새것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듯, 너무 많은 추억의 집착은 나 자신에게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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