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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Jun 13. 2022

[회사생활백서 #30]회사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기를.

한 10년 전쯤이었다.

학교 선배가 있었는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한 선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는 선배도 아니었기에, 그의 건장한 체격과 우락부락한 얼굴 표정을 기억하는 나에게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듣고 더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회사가 법정관리를 들어가면서부터 그가 회사 내에서 힘들어지며, 버티면서 겪은 그 수많은 일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입사한 지 12년 차였다. 그의 힘듬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의 삶의 무게와 가장으로서의 역할 또한 내가 입 밖으로 함부로 내지 못할 것이다. '아니 회사를 그냥 나오지, 왜 그랬대?'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해 생각했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뭔지 모를 그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게 아닐까 했다. 


회사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스트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나에게 직장생활을 물어보는 후배들에게는, 항상 [너의 인생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라]라고 말을 하곤 했다. 사실, 우리가, 또는 내 세대가 가지고 있는 생각 중에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회사에게는 그 뜻조차 애매한 애사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그런 거대한 존재로만 여겨져 왔다. 신입사원 연수나 회사 단합회를 가면, 조금 거짓말 붙여서, 북한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회사의 충성심, 애사심을 강조하던 시기가, 내가 회사를 입사하는 20세기 후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사장이 되어 있었다는 이명박의 신화 같은 얘기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주장했던 김우중의 생각들을 익혀 온 세대로서, 자기 인생에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임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도망갈 구멍이 없어진다. 분명 도망갈 수 있는 구멍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멍을 나가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생쥐의 꼴이다. 나가면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구멍밖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새롭게 나를 누를 거라는 알 수 없는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지. 비겁하게 도망가는 건 뭐야?' ' 일단 정리하고 보자. 이렇게 나간다고 달라질 거 없어.'라고 주변에서는 쉽게 얘기할지 모른다. 꼬드길지도 모른다. 이건 그렇게 쉽지 않다.  


하루아침에 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회사는 당신이 아무리 회사에 충성을 다해왔고, 회사 성장에 기여를 해왔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성과에 따라 월급 좀 올려주면 회사의 역할은 다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잘 가'라는 외마디와 함께 등 돌리는 그런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이 거대한 영리 단체는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일말의 자비란 없다. 그저 앞을 바라보며 매출과 이익을 따져가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옆에 사람이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없다. 바로 새로운 사람으로 전진 배치시켜서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지를 못하는 경쟁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러한 사항을 일찍이 파악하지 못하고 지내다, 결국에는 내쳐짐을 당하는 결과를 보면, '아.... 내가 지금껏 뭘 하고 살아온 걸까... 내가 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이건가..'하고 후회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공허함, 배신감 등의 감정에 사로잡혀 우울증을 겪고, 결국에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내는 사람이 모르긴 몰라도 매년 발생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정의 역할도 중요하다. 세상이 치사하고 더럽다고 말은 하지만, 그 더럽고 치사한 일을 겪고 들어오는 엄마, 아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속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 당장 나의 생계가 힘들어진다는 현실적인 벽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못 하는 어른들의 심정은 실로 헤아리기 쉽지 않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 못해, 그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고 있을 어른들에게 조금이라도 애정 어린 말들과 살갑게 대해줌으로써, 조금은 그들을 맘 편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뉴스에서도 30년을 근무한 모회사의 고위간부가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상부의 부당지시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평사원으로 강등에 지방지사로 발령 나는 치욕을 어떻게 겪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냥 때려치우고 나왔으면 됐을 텐데,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떤 감정보다, 그 30년이 통째로 날아가는 처우와 상실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회사는 회사다. 그래 봐야 인생의 한 단면이고, 아무리 현실적으로 발이 묶여 있다고 해도, 언제라도 그 묶인 발의 매듭을 풀 수 있는 준비를 하자. 게을리 일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회사에 목을 맬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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