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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Apr 22. 2022

[회사생활백서 #29] 장유유서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공자의 유교철학을 바탕으로 지어진 삼강오륜에서, 오륜중 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한국사회는 예전부터 나이를 중시하는 독특한 문화 <?>가 자리 잡고 있어, 어떤 이유에서 한 무리가 만들어지면, 그중의 좌장 격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독차지했다. 또는, 아주 작은 모임일지라도, [일단 서열을 좀 정리하자]라는 식으로 몇 살인지 물어보는 문화는 일찍이 내가 자라온 2000년대 전후반 세대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일단, 나이로 어떤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이러한 풍습 <?>은 옳지 못하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형님이다..라는 말은 그저 그런 모임에서나 통용될 말이지만, 뭔가 나이 많은 것으로 형님 취급을 받으며 유세를 떠는 것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그러한 유교적 기준은 지금 회사에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회사가 변했다. 사실 이런 변화가 너무 빠르게 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예전의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하며 세상의 흐름에 뒤쳐진 회사 문화를 가진 한국의 대기업에서 조차도, 회사 내에서 나이가 많다거나, 입사가 빠르다거나 해서, 그로 인해 회사 내 지위가 높아야 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했었지만, 작년 임원진급을 목전에 둔 사람이, 최종 발표날에 임원에 오르지 못하고, 그 밑에 있던 사람이 임원에 오르는 기이한 현상 <?>이 있었다. 이유는 젊은 CEO의 지침사항으로 임원진급에 나이 제한을 걸어버린 것이다. 즉, 나이가 많다고 진급을 하는 게 아니라, 젊은 나이에 능력 있는 사람을 임원으로 올리자는 취지였던 것이다. 그 진급을 목전에 둔 사람은 올해 52세였고, 그 밑에서 임원에 오른 사람은 47세였다. 


어떻게 보면 역차별일 수 있다. 

업무를 함에 있어,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무 문제가 안된다는 논리라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적은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논리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적어도 내가 봐온 지금의 국내 기업의 경우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역전 <?>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예전 같으면 억울하고 분하고, 마치 회사를 나가라고 하는 신호처럼 보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기분은 나쁘겠지. 짜증도 나고, 내가 이 회사에 바쳐 온 그 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며, 나의 헌신에 답하지 않는 회사를 원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깐이다. 내가 이 회사에 몸담고 있는 것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루가 지나 한 달이 지날 것이고, 일 년이 지날 것이다. 그냥 내려놓으면 된다.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은 내려놓는 것에 인색하다. 항상 위만 바라보며 견뎌온 세월들이 있을 테니, 손에 쥐고 놓치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 모래를 쥐어봐야, 틈새로 슬슬 새어나가는 것처럼, 그런 허상을 꿈꾸는 게 아닌가도 생각한다.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하다. 정해진 시간안에 나에게 주어진 일만 묵묵히 수행하고, 나는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면 된다. 인생의 의미는 그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고, 회사는 내 것도 아니거니와, 나의 삶의 전부가 아니다. 


요즘 회사에는 예전 차부장, 심지어는 임원급까지 올라갔었던 사람들이 직책에서 내려온 이후, 젊은 팀장들이 있는 팀에 속해 팀원으로 일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는 모양이다. 물론, 껄끄러움이야 완전 없진 않겠지만, 그런 캐리어를 내려놓고 평범하게 지내도 특별히 문제될 건 없다. 


내가 입사했을 무렵에 부장이였던 한 인물은, 지금 거의 정년이 다 되어가지만, 평범한 팀원으로 남아 있다. 그 팀에서는 거의 전설급이다. 본인에게 주어지는 평가점수는 항상 최하점에 가깝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움을 얻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이나마 있어야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딱히 문제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잘 지내고 있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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