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백서 #38] 조금 더 버텨볼까

by 하찌네형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당시 대리였던 사람이 어제 전화가 왔다. 이제 나이는 50대 중반을 접어들었다. 나는 그 사람이 왜 전화하는지 알았지만, 쉬이 내치지 못했다. 20여 년 만에 연락이지만, 마치 지난달에도 만난 것 마냥 쉬이쉬이 말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그는 50대 중반에 회사를 나왔다. 상사와의 갈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한 반년 쉬면 다른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다. 나에게도 좋은 자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사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50대 중반이면 참 힘들게 일하셨다고 본다. 적어도 30년은 일하신 셈이다. 이젠 좀 쉬어도 되지 않겠냐 했는데,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딸이 있어 쉽지 않다고 한다. 힘들고 힘든 인생이란 생각을 한다. 나의 의지가 아닌, 내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 뭔가 보이지도 않는 더 열심히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살아야 하는 그런 삶이 그려지니, 턱 하니 숨이 막힌다. 그러니,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안 가지려 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고 다분히 꼰대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나를 돌아본다. 이제 회사생활 20여 년째. 내가 입사했을 때, 내 회사 앞에 있던 유난히 노란 개나리가 뒤덮었던 초등학교에 그 어린이들을 보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재잘거리는 모습에 귀엽다 했는데, 그들이 이제 30대 중반이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빠르게 흘렀고, 내가 속한 대학축구모임의 OBYB전을 하면, 내 나이또래에서 제대로 뛰는 사람들이 없다. 물론 뛸 수 있겠지만, 다치면 온전히 내 손해기 때문에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그들과 쉽게 뛰어지지가 않는다.


나는 40대 중반부터 퇴사를 생각했다. 이유는 많다. 딱 그 시점이, 회사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아야 하는구나를 깨달은, 딱 그 시기이다. 물론 지금의 회사가 나의 경제적인 부분을 쥐고 있기에, 한편에서는 맘 편한 생각을 하며 자리 지키기에 연연해하는 그저 그런 40대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게 너무 싫었다. 누가 그런다. '야, 그냥 있어. 나오면 뭐 다를 거 같아?' '결국 똑같아.' '나와서 뭐 할 건데? 뭐 할 건지 생각하고 정해지면 나와도 안 늦어' 그래, 알고 있다. 그럴 거 같아서 계속 버텼다. 버티다 보면, 이 삶에도 즐거운 뭔가가 생기지 않을까 했다. 근데, 없더라. 아직 덜 기다렸나? 그래서 좀 더 버텨야 하나.


요 며칠 내가 담당하는 몇몇의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관련사업을 중국에 매각했다. 이제, 흠... 막다른 골목에 온 기분이다. 때문에 뻔지르르하게 중국에 다니고는 있지만, 난 거기서 언제나 이방인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그들과 만나 얘기하다 보면, 너무 암울한 얘기만 있고, 장래가 없다 보니, 스스로가 위축된다. 이걸 버텨야 하나, 이쯤 돼서 털고 나와야 하나. 회사에 긿일고 헤매는 40~50대 평사원이 널렸다.사람이 구렁텅이에 빠져본 적이 없으니 생각이 고정되어 있는 법, 뭔가 위기가 와야 발버둥이라도 치며, 먹고살길을 찾지 않을까. 다만, 좀 다른 걸로, 새로운 걸로 말이다.


물론, 난 아직 중학생과 유치원인 아이들이 있다. 물론, 여우 같은 아내도 말이다. 자, 이 시점에서 근로소득 상위 한 자릿수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회사를 나오겠다 하면, 주변에서 어떤 반응일까. 배부른 놈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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