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꿈을 꿨는지, 아침부터 이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사람은, 생명체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시작은 무었이였을까.
우리가 가진 상상력을 아무리 총 동원해도, 사람이, 생명체가 어떻게 이 지구상에서 나타났는지, 그 근원을 파헤치기란 쉽지 않다고 본다. 여러가지 어려운 이론들이 있을 것이지만, 나는 여기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접근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상당히 두서없는 글이 될 것같다. 그냥 머릿속에 잇는 것을 전부 꺼내놓을 요량이다. 말도 안되는 것 말고, 최대한 말이 되는 합리적인 관점에서만, 생명체를 바라볼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필요에 의해 진화, 발전해 왔다.
이 말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생명체가 필요한대로 진화해왔으며, 필요없는, 또는 필요없어진 부분들은 진화되지 못했다. 즉, 퇴화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시각이다. 여기서 부터 출발해보자.
그럼, 간단하게 이런 결론이 나온다. 쉽게 말해, 팔과 다리, 눈과 코, 귀와 입, 그리고 각종 신체기관들은 필요에 의해 진화해 왔다. 필요하니깐, 그렇게 진화했다. 누가? 우리몸속의 세포가.
잠시 시계를 지구가 막 태어났을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어떤 모습이였는지, 어딘가 과학프로그램에서 본 그러한 빨간 지구같은건 생각안하겠다. 그냥 [지구]라는 뭔가가 있었다고 본다.
처음 지구는 물과 땅이 있었을까...라고 한다면, 최초의 지구는 물만 있었을 것으로 보고, 땅은 물 속에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본다. 높은 산맥에서도 조개껍대기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하의 2가지 가설이 가능하지만,
(1) 원래 바다는 상당히 깊었으나, 태양으로 인해, 계속 증발되어와, 지금에 왔다.
(2) 원래 바다밖에 없었고, 땅은 바다속에 있었지만, 지각(폭발)의 움직임으로 인해, 높이 솟아 지금의 땅이 되었다.
둘 중에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2)로 본다. 바닷물의 증발된 만큼, 다시 비로 내리지 않을까. 또는 만약 그렇게 증발되었다고 한다면, 그 증발은 지금도 어느정도 일어나고 있어야 함에도, 비록 짧은 100년의 근대 역사지만, 바닷물이 감소했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현대 과학자들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다.
(*주석을 달자면, 현재 과학자들은, 지구는 최초 달궈진 암석덩어리였다가, 곳곳에서 화산이 분출해 지금의 지각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산이 분출할때, 이산화탄소와 이산화황등이 분출되는데, 이것과 같이 다량의 수증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 수증기로 인해, 비가 내렸고, 그 비가 오랜세월내려서 바다를 형성했다는 것이, 현재까지 나와있는 바다형성의 중론이다. 비가 내려, 바다가 되었다.....는 부분에 대해,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 비가 사시사철 엄청나게 내렸다라고 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다시, (2)로 가자.
최초의 생명체는 산소를 흡입하는 형태는 아니고, 바닷속에 존재하는 미생물, 또는 어떤 세포단위로 만들어진 그 [무엇]이였을 것이다. 그 [무엇]이라는 세포가 어떠한 계기로 뭉치고 뭉쳐, 다세포의 [무언가]가 되었을 것이지만, 그건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그저 둥둥 바다속을 떠다니는 단순한 [무언가]였을 것이다.
생명체의 근원은 아마도 바다에서 생겨났다고 보는게 타당해 보인다. 뭐..육지에 뭐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무언가]가 모이고 모여 형체를 만들고, 그 형체가 계속 진화해 오면서, 어떤 이유에선가 물고기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물고기들(물론 단순하진 않았겠지만)은, 지각변동으로 인해 생긴 땅으로 툭툭 튀어 올라왔을터, 하지만, 아가미로 숨을 쉬던 그들에게 땅의 산소나 혹은 이산화탄소는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한 이유로 인해, 계속계속 도전을 했으리라.... 파도에 떠밀려 온, 원치 않는 도전이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아니면, 바다에 살지만 고래, 상어와 같은 표유류가 먼저 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이 위대한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포는 느리지만 조금씩, 최대한 적응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실로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그러한 노력이 계속 쌓이고 쌓여, 어떤 [무언가]는 높은 곳에서 계속 떨어지면서 [날개]를 만드려고 세포를 분열/확장시켰을 것이며, 어떤 세포는 어딘가를 기어가기위해 [발]이라는 것으로 확대, 진화해왔을 것이다. 그러한 진화는, 그 [무언가]가 쳐해있는 상황에 따라 그에 맞춰 진화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확실한건, 아담과 이브는 아닐것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보다, 나는 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둔다. 즉, 옛 성인들의 위대한 글귀는 지금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넓은 깨우침을 주는 것에 이견은 없다. 다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초 자연적인 상황에 대해,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 주체를 파악할 수 없다.
지옥이, 극락이, 영혼이, 과연 어디에 있는건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플라톤이 [이데아]에는 물질의 본질이 있다고 했지만, 그 이데아가 어디있는 것인지가 명확하진 않것과 같지 않않을까.
사람이전에, 시람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는 증식을 통해 계속 성장해 나간다. 우리는 우리가 자아를 가지고 생각하는 굉장히 특별한 존재로 알겠지만, 사실을 세포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을 "본능"이라고 본다. 누가 딱히 가르쳐준적은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들 말이다. 쉽게 말해, 세포가 죽으며, 우리도 죽는다. 그러기 전에, 몸속 세포는 계속해서 그 존재를 번식하려고 하며, 그런 종족의 번식을 인간 또는 생명체를 통해 하려고 한다. 흡사, 에일리언 같은 영화에 나오는 숙주인 것이다.
그렇게 종족의 번식을 위한 세포의 명령을 받고, 종족번식을 한다. 번식이 끝나면, 우리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상복귀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뇌가 시킨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처음에 [무엇]에서 시작한 바닷물속의 세포가 모여, [무언가]가 되었으며, 그 무언가는 육지로 올라오며, 산소를 공급받아도 살 수 있도록 [폐]를 만들었으며, 계속해서 필요에 의해 진화해 와, 결국 몸속기관을 만들었으며, 팔, 다리와 눈, 코, 귀를 만들었다. 필요한 만큼 세포가 분열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돌을 계속해서 전파해오는 과정에서 좀 더 사람같은 모양으로, 다른 생명체의 모양으로 진화해 온 것이지 않을까.
최초 사람은 [털]에 뒤덮혀 있었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또는 사냥이나 채집을 할때, 맨몸으로 견디긴 어려웠으니, 세포가 그에 알맞게 진화해, 사람몸에도 털을 나게 해, 추위나 수렵/채집활동으로 인한 몸을 보호시키게 한 것이다.
단, 털로서는 부족해, 동물의 가죽등을 이용한 옷을 만들어 입으면서, 털의 필요성은 줄어들었으며, 결국 털이 퇴화되었다라고 본다면, 이것은 합리적일 것이다. 다만, 인체의 중요한 부분인 머리와 가슴(요즘은 가슴에 털이 없지만), 그리고 번식에 가장 중요한 생식기는 털을 이용해 잘 보호하게 했을 것이다.
근육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는다.
단순한 진실이지만, 우리의 근육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딱 필요할 만큼 붙어 있다. 다리근육을 예를 들면, 몸이 크면, 그만큼 다리근육이 두꺼우며, 몸이 작으면 그 반대이다.
근데, 무거운 역기를 들고 스쿼드운동을 하면, 우리 근육은 그걸 버티지 못하고 상처가 난다. 본디, 딱 몸무게만큼만 지탱할 정도의 근육인데, 그 보다 무겁게 자극을 시켜주는 것이다. 그럼 근육이 생각한다. [더 만들어야 겠군~]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세포는 그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서 근육을 만들어 준다.
반대로, 만들어진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즉, 운동을 지속하지 않으면), 근육은 본래 딱 필요한 만큼으로 줄어든다. 필요없는 만큼, 근육세포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것은, 빛이 우리 눈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인데, 이때도 눈속 근육이 재빨리 움직인다. 근데, 나이가 들면 이러한 근육이 퇴화한다. 자연스럽게 퇴화하는 것일까, 사용하지 않아 그렇게 되는 것일까.
현대 의학은, 세포의 계속 분열이 시간에 지남에 따라, 그 움직임이 느려진다, 수가 줄어든다 하지만, 나는 그 견해에 반대하고 싶다. 뭐, 어디까지나 희망이다. 눈 근육도 멀리 있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면, 다시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가까운데만 보다보면, 그 능력이 퇴화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뇌세포도 그러하다.
뇌세포도 필요없으면 퇴화한다. 그래서 필요가 있도록 계속 써줘야 한다. 책도 읽고, 일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대화하고 기억하며, 계속 써야한다. 그래야, 뇌의 퇴화도 최대한 늦출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내 부모와 같은 유전자이다.
나는 내 부모와 같은 유전자라는 전제 전에, 내 부모안에 있던 세포들은, 자신의 세포를 다시 번식시키려고 할 것이다. 세포의 목적은 번식이며,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는 [증식, 번식]이다. 이를 생명체의 몸을 빌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건,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적용된다. 심지어는 식물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번식을 위해, 과일을 맛있게 하며, 향기로운 냄세를 풍기며, 다른 생명체게 그 과일을 먹어, 씨앗이 배설물과 함께 땅속에 묻히면서 증식한다. 또는 "쉬오크"나 "뱅크스소나무"처럼 씨앗을 터뜨리기도 하고, "국화쥐순이"처럼 자기가 스스로 증식하려고, 땅을 파고 들어가 씨앗을 심는 식물들도 상당히 많다.
그렇게 본다면, 식물이나 나무처럼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들은, 그들이 어떻게 해야 번식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않았을까? 목적은 개체의 번식이다. 과일을 맛있게 해야, 움직이는 생명체가 먹어 배설을 통해 증식을 한다는, 그런 사실을 배워서 알았을까? 아니면,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을 알기에, 우리의 지식은 너무나 부족한게 아닌가 한다.
그런 움직일 수 없는 생명체들의 처절한 번식을 통한 생존경쟁과는 달리,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들은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존재들이 합쳐져, 새롭지만, 같은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를 탄생시킴으로서, 다시 번식을 성공한다. 그렇게 태어난 우리들은, 우리 부모와 많이 닮아 있다. 당연히 같은 세포로 이루어진 같은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세포로 도착하겠지만, 그 뿌리에서 나온 수많은 [인간] 또는 [무언가]는 그 환경에 맞게 자라면서, 조금씩 독특하게 진화 발전해 왔다고 보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꿈을 꿨나 보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는 어떻게 태어난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했던거 같다.
그렇게 눈을 뜨자, 내가 숨쉬고, 내가 만지고 듣고 보는 그 모든 것들이,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그 모든것들이,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 머리속은 끊임없이 뭔가를 생각하느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잠깐 눈을 감고 내 오감이 느끼는 아침기운을 받아보니, 이렇게 대단한 것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살아온 게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름 진화인류학적인, 다분히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면서 출근한 하루이다.
쓰다보니 두서없는, 그냥 의미없는 배설을 위한 글이 된 것 같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