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다같이 공부하게 해주세요.
아빠. 나도 책상 사줘
어렸을때는 따로 아이의 책상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뭔가 앉아서 해야하는 업무<?>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케아에서 플라스틱 책상과 의자를 사왔었다. 이젠 온갖 낙서로 지저분해 진, 그리고 앉아도 무릅이 책상밑으로 들어가지 않는 작은 책상이 되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언젠가 친구집에 다녀오더니, 대뜸 책상을 사달라고 한다. 특별히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초등학생이고 숙제나 공부도 할테니, 당연히 책상은 있어야겠지..라고 쉽게 생각하다가도, "근데 책상이 왜 필요하지?"라고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자기 방에 책상이 있다고, 정말 아이들이 그 책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하고 말이다.
내 어릴적을 생각해보면, 혼자 공부할때는 무엇보다도 조용한 환경으로 인한 집중이 중요하다는 문제이라는 생각에, 내가 공부하던 1990년대에는 독서실이 유행했었다. 물론 학교마다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반강제적으로 시행했지만, 저녁 9시가 넘어 어두운 밤이 되고 나서도, 그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독서실은 조용히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있었던 반면, 서로를 불러내며 밖에서 노는등의 비행(?)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조용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게, 별밤등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아이들이나, 오자마자 자기 시작해서, 밤늦게 깨, 집에 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조금 더 과장되서 말하자만, 독서실은 부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 역활을 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였다.
그들은, 집에서의 여러 환경이 공부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 밖으로 나왔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집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주는것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TV 좀 보려하면, 게임 좀 하려하면, 만화책을 좀 보거나, 소파에 앉아 좀 쉬려하면 들려오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들을 집에서 밖으로 내쫓는 역활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공부라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중에는 [조용함]이라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 있다고 본다. 고시공부를 한다는 학생들의 경우, 절로 들어가거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조용한 가운데서 집중해 공부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공무원이나 각종 시험을 위해, 노량진으로 학생들이 몰린다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흔한 말이 되었다.
물론,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그러한 분위기로 인한 의지향상을 꾀할 수 있겠지만, 기본은
[조용하다]는 것이며, 그것은 [집중이 잘된다]라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최근의 트렌드를 보면 조금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흔한 커피숍을 와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다소 웅성거리는 도서관이나, 내가 근무하는 코엑스내의 벤치(별마당도서관)에서도 공부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조용하다]라는 것이 단순히 [집중이 잘된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혹시, 집중의 근본원인이 단순히 시끄럽다가 아닌, 뭔가 다른게 아닐까.
예전에 외국에서 출장온 사람의 말을 들어, 자기는 중요한 프로젝트나 서류를 작성할때면, 꼭 커피숍에 가서 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때, 스타벅스에서 프로젝트 관련된 내용들을 토론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 시끄러운 곳(내가 가본 미국 스터벅스는 정말 시끄러웠다)에서 무슨 집중이 된다고 그럴까 싶으면서도, 언젠가 부터 나도 같은 생각을 하며, 커피숍에서 일하는 나를 보면, 단순히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보다 집중도 잘되고, 일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느낀다. 왜 그럴까?
나는 왜 집에서 그렇게 편하게 공부하지 못했을까를 생각한다. 가장 원인으로 생각되는 것은, 뭔가 느껴지는 부모님의 부담스러운 시선들이 아니였을까 한다. 당시에는 [공부해라]라는 그 흔한 레파토리가 너무나도 쉽게 유행하던 시기였고, 공부 이외의 것들은 학생으로서 하면 안되는 것이였다. 학생은 공부해야 하며, 그래서 좋은 대학을 가는게, 그들의 목표였으니, 그 분위기만큼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공부잘해서서울대 간 친구들의 집안이나, 뭔가 공부로서 성공했다고 해서 인터뷰하면, 그 누구도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라던지,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어요]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마치,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학원은 다니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수능만점자들의 영원한 레파토리처럼 말이다.
물론 잘하니깐 공부하라 소리를 안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보고 싶기도 한 건,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치뤄진 모의수능에서, 유일하게 전국구에서 성적이 높던 한 아이만 매를 맞지 않았으며, 그 아이 또한, 집에서 공부하란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전부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 [공부해라]라고 듣지 않은 환경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학습능률을 올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다시 공부하는 환경 얘기로 돌아보고자 한다. 결국 학생이 맘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의 일본은 어떠한가.
재미있는 자료가 있어 찾아봤다. 미국의 자료를 찾아보려 했으나, 공부의 환경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시아권과 많이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맞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상기와 같이, 근처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니, 거실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특히, 좋은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을 기준으로 물어봐도, 거실에서 공부했다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같으면, 거실에는 응당 TV가 있고, 소파가 놓여있어, 가족들이 TV를 보는 가운데서 공부한다는 건 쉽게 상상이 안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거실을 서재로]하는 움직임들이 있었다. 즉,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을 어떤 한 목적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환경을 위해서는 부모나 다른 가족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같은 경우는, 아이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TV를 가능한 안보려고 노력한다. 사실 안보려고 노력한다기 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나오는 예능프로에 별로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보다는 다큐멘터리나 토론방송, 밤늦게하는 외국 스포츠경기를 보는것이 전부임으로, 자연스럽게 아이와 있을때는 TV를 꺼두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리 아이도 거실식탁에서 뭔가를 하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식탁은 늘 무언가로 가득이다. 물론 아이는, 엄마와 같은 공간에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부엌근처의 식탁이 가장 편안한 장소라고 생각하고, 엄마도 그런 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나 역시도, 아이가 식탁위에서 자기 일을 하는 것에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한두번 관심은 가지고, "뭘 좀 도와줄까?"라고 물어는 보지만, 딱히 반응이 없다면, 그냥 놔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른건 없이, 아이가 집에 대해서 항상 친숙한 감정을 가지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우리 가족이 모두 있는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짜증나고 화가나서 방문 닫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을지언정, 평소에는 집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가 하고싶은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지금으로서는 공부보다는 건강이나 가족간의 유대관계를 좀 더 돈독히 하고 싶어하는 쪽이니만큼, 아이에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아이가 집을 좋아하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그 옛날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