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하기
입사 초기, 이곳저곳에서 날아드는 동료들의 회의록으로 인해, 다소 난감해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런 회의록을 내가 작성하게 되었을 때의 뭔가 막막함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등에 대해서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업무 특성상, 매주 몇 개씩의 회의록은 항상 제출해야 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회의록 작성이야말로 서로 간의 업무를 공유한다는 차원을 넘어, 나의 업무에 대한 기록이자, 업무를 정리하는데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입사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당시 내 상사가 그랬다.
메일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주던 그는, "회의록이란 내가 업무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당시 그 회의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며, 또한 단순히 결과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회의 전반에 대한 분위기를 상세하게 전달하는, 그런 회의록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회의록에는 단어 선정에도 심사숙고해야 했다. 애매모호한 뜻의 단어나, 내가 평상시에 편하게 쓰는 용어가 들어가면 안 된다. 너무 어려운 한자어나 영어, 갑툭튀의 축약 단어도 안된다.
그래서 내가 정한 기준은 "이 업무를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사실 쉽지 않다. 아는 사람들만 알게 쓰는 것은 상대적으로 간단할 수 있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에게 그 업무를 설명하게 쓴다면, 회의록 자체가 장황해질 수 있다. 내가 바라는 최소한은 [한눈에 봐서 알 수 있는 회의록]이었으나, 또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지만, 실상 그렇게 잘 정리하는 직원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지금의 나도 아직 노력 중이다.
회의록을 잘 쓰면,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들에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작성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많은 회의록을 보고, 작성해 온 사람으로서 몇 가지 팁을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정답은 아니며, 다른 스타일의 회의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익혀두어 나쁠 건 없으니, 효율적인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회의록 작성의 기본은 "육하원칙"이다.
내 글이 잘 정리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5W 1H만 기억하면 된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의 기본원칙은 회의록뿐만이 아니라, 회사생활 전반에서 아주 기본적인 부분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이러한 보고를 군대에서 배웠다.
- 상관 : 자네는 집이 어디인가?
- 나 : 네. 이병 XXX. 서울입니다.
- 상관 : 서울이 다 너의 집인가?
- 나 : 아닙니다. 서울 서초구입니다.
- 상관 : 서울 서초구가 전부 너의 집인가.
우스갯소리 같지만, 당시 이런 식의 농담을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즉, 상관에게 보고할 때는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지금 적국의 포탄이 날아들고 있는 긴박한 순간에, 긴 시간의 보고를 하고 그때마다 궁금증이 나오는 상관의 질의에 답한다면, 엄청난 시간낭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회의록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질문의 Re) 메일이 온다면, 내가 뭔가 잘못 적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2. 내용이 복잡하면, 최대한 정리해서, 도표로 기입하자.
- A회사에서 진행된 내열 내구성 테스트에서 초기 상태, 12시간, 24시간, 120시간과 240시간을 평가했을 때, 그 결과, 각각 3도, 6도, 8도, 10도씩의 변화가 보였음. 다만, 내습열 평가에서는 이보다 평균 2도씩 낮은 결과를 보임으로서, 온도에 대한 반응이 습도도 같이 평가한 결과에 비해 큰 변화가 확인됨.
그다지 어렵지 않은 예시를 가지고 왔지만, 실상은 저보다 상당히 복잡할 것이다. 그런 복잡한 내용을 말로 설명한다면, 읽는 사람이 지칠 수 있다. 인간은 원래 글보다는 그림에 대한 이해가 더 빨리 오기 때문에, 표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된다면, 과감 없이 정리하자. 이건 센스가 필요한 부분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된다. 한눈에 들어오게 말이다.
- A회사에서의 평가결과는 하기와 같음. 온도에 대한 각도 변화가 큼.
3. 하고자 하는 말이나, 결론은 앞으로 빼고, 그 뒤에 설명을 하자
- 지난달 10일에 제출한 AA-01샘플의 평가NG이후, 2주후에 AA-02에 대한 샘플을 추가 제출, 해당 결과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 업체 측에서는 노광후 선명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자사 쪽 연구소에서의 back data를 추가 제출함과 동시에, 업체에서 요청한 추가 평가를 유관기관에 제출, 결과지를 제공하였음. 그 결
과 업체 측에서의 신뢰성에 다소 걱정은 되나, 1차 사내 평가는 OK 판정을 받음.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중요한 건, 그래서 AA-02 샘플의 향방이 어떻게 됐느냐가 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AA-02 샘플에 대해, 신뢰성은 다소 걱정되나 1차 사내 평가는 OK 판정을 받음. 지난달 10일....]이 되어야 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서두에 뽑게 되면, 이미 결론을 알아버린 영화처럼, 전체 맥락이나 뜻이 결론을 바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니, 훨씬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회의록을 읽다가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야?]하고 의문을 생기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정작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제출한 두 번째 샘플은 OK랍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임으로, 강조하고 싶은 그 말을 가장 처음에 쓰는 것이다.
4. 불필요한 문장 줄이기 연습
<중동항로와 관련된 특이사항>
이슬람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라마단이 지난 8월 18일에 끝났습니다.
따라서 중동 항로의 거래량과 실재 적재 비율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라마단 직전의 실재 적재 비율은 95%에 육 박했습니다).
또한 중동 항로 선사협의체에서는 2012년 7월 중 컨테이너 당300달러의 성수기 할증료를 부과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유예했습니다.
예전, 드라마 [미생]에서 상사가 부하에게 말 줄이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제시했던 문장이다.
꼭 드라마처럼 극단적(?)으로 줄 일 필요는 없다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훈련은 많은 도움이 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봤는데, 이럴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소석률, IRA 등의 전문용어를
사용했지만, 나는 그 분야를 몰라, 상기 문장의 표면적인 내용으로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중동항로 특이사항>
라마단 종료에 따라(8/18), 중동항로의 거래 및 실재 적재가 늘어날 예상. (라마단 직전은 95% 정도)
또한, 중동 항로 선사 협의체에서 성수기 할증료를 유예함(2012년 7월 중, 컨테이너당 300달러 분)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듯, 글 쓰는 방식도 다르고,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고 본다.
가장 보편적인 작성방법으로 누구나 손쉽게 이해하는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어렵지만, 회의록을 작성한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가 보다는, 뭐 하나 건질 것 없는 회사생활에서, 나름 뿌듯하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기록 보고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 내가 내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은, 이상한 감정도 느낄 수 있다.
회사생활을 20년 정도 하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정작 내가 뭘 했는지, 그냥 하루하루 잘 버티며 잘 살아온 것으로 충분한 건지에 대한, 막연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다소 위안으로 삼는 것이 회의록인데, 그 안에는, 그 당시에는 내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있었고, 무엇으로 힘들어했으며,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랐는지에 대한 과거가 담겨있다.
업무의 과정이겠지만, 업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성 들여 작성해본다면, 언젠가 어떤 식으로라도 반드시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