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교수를 생각하며.
언젠가 의대다니는 친구를 통해, 그 교수님의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당시 ICU(집중치료실)에서 힘들게 근무하던 그의 대답은 [실력은 있지. 좀 특이한 면이 있지만...]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같은 대학에 있었지만 실제로 본적은 없으며, 의대와 공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실제로 내가 대학선배라고 말하기도 민망할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애뜻함이 있는건, 아무래도 대학이름이 온 신문을 도배하게 만든, 그리고 지금도 심심치않게 학교의 이름을 신문에 올려주는 대단한 선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다.
그런 그가, 그간의 힘든일을 털어놓는것은,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현실일지도 모른다.
병원 밖에서 보면, 잘나가는 의사에, 인정받는 의사에, 모두에게 현 시대의 [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칭송이 자자한 그가 아니였던가. 마치, 대학병원에는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이며, 변변치 않은 대학병원에서 이 정도로 대단한 아이콘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 국민이 좋아하고 아껴 의심치 않을 정도의 대단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손을 거쳐간 사람들은 필시, 엄청난 안도감과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너무 힘들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앵벌이라는 말에, 오늘 아침 많은 생각을 했다.
회사생활에 그 [앵벌이]라는 잔인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은 자책과 함께, 어쩌면 이렇게 딱 맞는 단어로, 나의 회사생활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똥참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기에, 실력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전부 회사에서 인정받고 좋은 연봉에 좋은 처우를 받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저 앵벌이에 지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40줄 넘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앵벌이를 하기 위해 회사를 들어와, 그 의미도 명확치 않는 [애사심]을 발휘하며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한낱 불장난에 지나지 않았음을, 너무 잘 깨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변화는 힘들다. 그것은 내가 회사의 장이 되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변화는 모두를 힘들게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내가 있을때는 안된다. 나 나가고 난 다음에 그렇게 하라]라는 어느 유능하신 고위공직자의 말처럼, 나는 그저 지금의 시스템에 맞게 순리대로 돌아가고 싶은 뿐이다. 모두가 변화를 외치지만, 그 변화로 인해 고생할 것을 생각한다면, 그냥 지금 아날로그 적인 방법과 생각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시덥지않은 지출전표하나도, 예전에 영수증을 붙이고 수기로 쓰던 시대에서,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바뀌게 되었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시스템조차 낫설어 했으며, [그냥 예전이 좋아. 뭐하러 바꿔?] 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그 변화가 필요했다고 봤을 것이다. 지금도 맛있을지 모르지만, 더 맛있는것이 있는데, 왜 안먹는지가 답답했을지 모른다. 식당주인은 [재료가 비싸다, 다루기가 힘들다] 등등, 차일피일 미뤄왔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 [더 맛있는 것]을 고집하며 식당주인과 대치했을 것이다. 뻔하디 뻔한, 주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렇게 변화라는건 쉽지 않다.
저런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더 좋은 환경이 될텐데 하는 아쉬움이 깊어지는 하루이다.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사는 나의 다음 세대는, 더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