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를, 남 보기처럼 하자.
숨이 들어갑니다. 코를 통해 기도를 통해 폐를 지나 온~ 몸으로 전해질 정도로 깊게 들이 마십니다.
호흡에 집중하세요.
이제 숨이 나갑니다. 손끝 발끝 마디마디까지 들어왔던 숨이, 이제 다시 거꾸로 빠져나가는 기운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명상을 배우러 가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나 또한 많은 CEO들이 생활속에서 명상을 한다는 것을 접한 이후, 명상에 대해 배워보려고 무척 노력을 했었다.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국내외 각종 정보를 담은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이 [명상]이란게 도데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쉽게 몸에 와닿지 않았다. 그저 눈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도 아니였으며, 뭔가에 집중하거나 멍때리고 있는것이 명상인건지도 잘 모르겠었다. 그냥 뭔가 마음편하게 다른 생각하지말고, 내 호흡에 집중하며 잡생각을 안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새벽시간을 명상으로 보내고 있을 무렵, 도가 트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왔다. 뭔가 좀 평소와는 다른 마음이 차분해 지는 그런 느낌으로,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였다. 이게 뭔가 심오하기도 한 생각이겠지만, 자주 있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명상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생각을 비우라는 것이지만, 정작 생각을 비우는것이 명상의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운다고 비워지는 생각이 아니다. 명상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란게 사실 별로 잘난게 없어, 전부 우리 머리가 시키는 것을 그냥 곧이 곧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에서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주면 먹고, 졸려 자고 싶다고 하면 자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 하겠지만, 과연 그게 [나의 의지]인가, 아니면, [내 머리가 시키는 것을 따르는 허수아비, 껍대기]일까의 문제이다.
복잡한 얘기같지만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내 주변에 벌어진 일에 대해 무감각하다. 남이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힘들고 괴로울때, 그들 앞에서 또는 처음에는 [좋겠다. 힘들겠다. 안됐다]의 감정을 보이겠지만, 그 감정이란게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뭐 그다지 나에게 주는 영향이 지속되지 않는다.
내가 깨닳은 명상이란 것은, 나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싼 그 모든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좀 떨어져서 보라는 것이다. 당연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그 떨어져서 보는 힘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감정과 생각들로 인해, 내가 너무 힘들어질 수 있다. 그것이 곧 스트레스로 연결되고, 나로 하여금 계속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회사생활은 누군가가 인생에서 살아나가는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겪는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내가 아파하는 것은, 내 자신이 아파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뇌가 그것을 아파해야한다고 지시를 하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나 자신은 내 몸과 철저하게 분리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게 결국은 명상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본다.
쉽지 않다. 내 의지와 내 머리가 같은 것인데 어떻게 제어를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것이며, 짧은 시간에 되지도 않고, 이렇게 글로 쓰고있는 나도, 그 수많은 잡생각들로 쉽지 않은 것이 명상이다.
잡생각이 많이 나도, [나는 구나~]하고 그냥 넘기면 된다. [아프구나~]하고 넘기면 되고, [춥구나~]하고 넘기면 된다. 다른 사람을 보듯, 나를 보는 연습을 오래하면, 점차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삼국지의 관우가 번성을 공격할때, 번성을 지키던 병사에게 화살을 맞는다. 이에 화타가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마량과 태연히 바둑을 둔다. 살을 찢고 꼬매는 고통이 있었겠지만, 그는 아픈티를 안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의지는, 이미 그 자신을 뛰어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살갖을 애이는 고통을 참는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힘들고 어렵고 짜증나고 귀찮은 것 뿐인 회사라는 것에서 잠시 떠나는 명상을 꼭 실천해보라 말하고 싶다. 몸이 건강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건강해 질 것이다.
명상의 명은, 한자로 어둡다는 뜻이다. [명복을 빈다]의 명과 같이, 어둠, 즉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한다. 그 보이지 않은 깊은 곳에 대해 생각해 보다면, 지금의 그런 나를 올가 맨 잡념따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한번 쯤 생각보면 좋겠다.
적어도 하루에 20분만이라도 이렇게 나를 돌아보자. 그렇지 않으면,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총알처럼 빨리 흘러갈 것이기에, 조금만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