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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Feb 12. 2020

40년간 쌓아온 물건 버리기

기억이, 추억이 꼭 눈에 보일 필요는 없다.

뭐가 많다. 버리질 못하겠다. 물건 하나하나, 옷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있어, 쉬이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정작 1년에 한번도 만지지 않았던 듯,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듯,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서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때마다 쉬이 버리질 못하겠다. 뭔가, 추억이 날라가는 그런 기분이다.


나의 경우에서는 자동차가 그랬다. 지금의 차는 16년전에 샀다. 당시의 차를 살때의 내 기분과 새차를 끌고 집으로 들어올때의 기분, 그 차를 통해 가졌을 그 수많은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차를 나는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뒷바퀴의 철판에 녹이 쓸어도, 앞쪽 범퍼에 스크레치가 생겨도 꾸역꾸역 고쳐서 타고 다녔다. 그 흔한 크루즈 컨트롤도 없으며, 여름이면 땀에 젖은 내 티셔츠를 식혀줄 바람이 시트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정말 사고났을때 작동할지 의심되는 에어백은 앞좌석 2개만 있으며, 아직도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가, 나름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그런 차를, 이 차가 사고났을때 나와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냐는 아내의 성화에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감장치 장착으로 2년은 고스란히 더 타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 차를 18년이나 타게 되는 셈이 되었다.


왜 나는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나는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당연히 이유가 있으니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아내와 사귀던 시절에 아내가 후쿠오카에서 힘들게 사 온, 건담 프라모델은 아직도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족히 20년도 훌쩍 지났을 이 플라스틱 덩어리를, 그 적잖이 큰 프라모델 박스를 들고 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니, 쉬이 버릴 수가 없다.


옷은 더더욱 그렇다. 옷에는 그 무엇보다도 추억이 있고, 옷 하나하나 어디에서 어떻게 구입하게 됬는지, 그때의 내 감정이 어땠는지, 그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몸이 변화하면서 점점 못 입게 된 옷들만 옷걸이에 수북히 걸려있어, 이제는 입을 수 있는 옷보다, 입을 수 없는 옷이 더 많이 자리하고 있다. 패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옷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영원히 가져가지도 못할, 짧은 추억의 단상이 될 것들임을 충분히 알면서도, 애써 그런 현실을 외면하는 것 같은, 어쩌면 모순된 나의 생각과 행동들일 것이다.  




그래서, 눈딱감고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부엌에, 임신한 아내를 위해 사 준 카세트테이프 데크가 있었다. 정말 수년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 아이를 틀어볼 생각도 않고 있다가, 우연히 찾은 노래방 녹음 테이프(예전에는 노래방에서 테이프에 녹음을 해줬다)를 들어볼 요량으로 작동시켜봤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미 카세트는 고장나 있었지만, 자리하나 변하지 않고, 긴시간을 그 자리에 있었다.


깔끔하게 버렸다. 예전에 속도조절이 되는 카세트가 있어, 토익 리스닝공부용으로 사용한 카세트도, 작동이 되지 않아, 같이 버렸다. 훗날 골동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물상에서 누군가 가치를 알고 주어가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것 같다.


옷도 버리기 시작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선택피로를 줄이기 위해, 검은색 티셔츠나 청바지 하나를 골라, 주구장창 그 옷만 입고 있어서, 손이 안 간 옷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옷이 가진 스토리가 가장 많고 기억이 녹아있어, 쉽게 버리지 못했다. 스토리가 없는 옷은 속옷이나 양말, 그리고 매일입는 와이셔츠뿐이였다.


그래도 오늘 옷을 버렸다. 이 옷은 하와이 Loss매장에서 득탬했다며 좋아했던 니트였지만, 니트의 특성 상, 여기저기 헤지고, 늘어나 입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버렸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버리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몇번을 생각해도 그 가치가 남다른, 그래서 내 자식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물건이외에는 전부 버리려고 한다. 물론, 많은 정신적인 노력이 뒤따르겠지만, 태어나 40년을 살아오면서 하나씩 모아온 물건들이 너무 많다.


언젠간 쓰겠지.......라고 생각하며 버리지 못한 물건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하는 뭔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런 생각으로 쌓아두기만 한 물건들이, 정작 나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리지 못하고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는 과거의 그 무언가가, 앞으로의 남아 있을 미래의 새로운 것을 막는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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