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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연의 연속

세상은 항상 당신을 응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by 하찌네형

나는 학창시절 그렇게 튀는 학생이 아니었다. 겉은 멀쓱하니 굉장히 모범생 같이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하나 모나게 자라지도 않고, 정말 어디에는 있지만 그 사람이 굳이 생각나지는 않는, 그런 학생이었다.


별다른 것도 없는것이,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특별한 코스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까지는 무난하게 흘러갈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가 조금씩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라고 본다. 흔히 말하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대학교로 진학한 남자의 경우, 특별하지 않는다면 20대초반에 군대를 다녀온다. 내 시기에 가장 일반적인 군대입영시기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였다. 나도 특이할 것없는 그런 일정을 따랐다.


그렇게 등떠밀려 간 군대는, 이미 전역한 대부분의 선배들이 말해주던 것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며, 나를 조금 더 발전시키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인생의 첫 시발점은 군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과 말들과 직간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준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의 삶에 귀한 밑거름이 되어 있다.


제대하고 나온 뒤, 난생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앞 커피숍이였는데, 사장님에겐 두 딸이 있었다. 그 중 딸 한명이 연기지망생이였는데, 일본에도 무용때문에 왕래가 잦은 듯한 말을 하였다.

어느날, 그런 얘기가 오고가는 가운데, 사장님이 [너는 외국에 나가본적 있니?]하는 약간은 나를 깔보는 듯한 말을 한다. 그런 의도는 아니였다 치더라도, 내 귀에는 [너는 그런데는 갈 수는 있니?] 하는 듯, 곱지 않게 들렸다. 이 가당치도 않은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크게 흔드는 도화선이 될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만 하다.


제대하고 사회에 적응하며, 이제 앞으로 뭐 할까를 고민하던 나에게, 그 사장님의 곱지않은 그 한마디는 [뭐, 그게 대수인가?]라는 이상한 반항심으로 틀어졌다. 사실 군대에 있을때, 후임으로 부터 [영어하나만 하면 굶어죽진 않는 답니다]라는 말을 많이들었고, 나는 당시 네오퀘스트에 만든 책을 정독하고 있었다. (*참고로 당시는 이메일이 태동하던 시절이고, 토익등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나는 그길로 부모님께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했고, 뜻밖에 아버지는 별말없이 그 자리에서 허락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IMF로 힘들어 할 때였기에, 그 시기에 외국을 나간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런 상황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월에 제대하고, 11월초에 사장님의 한마디에, 11월에 어학연수지가 결정되고, 12월에 운전면허를 포함, 필요한 서류를 준비한 채, 그 다음해 1월2일에 비행기에 몸을 싣었으니, 얼마나 급조된 유학이었을까.


호주의 멜번에 도착했을때, 당시 Monash University의 영어센터 정원 중, 한국인은 고작 10명도 안되었다. 일본에서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였던 기억이 있다. 우선, 영어는 Grammar in Use라는 영어책을 받아들고, 지금까지 내가 공부해 온 영어책은 모두 쓰레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내가 유학생활에서 얻은 첫번째 보물이였다. 또한, 이 멜번에서 함께한 내 인생 최고의 기억들은 지금까지도 나를 멜번에 방문해 그때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큼, 나의 인생에서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한번은, 12월초로 들어가는 어느날 나는 그 해 발생한 업무로 인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탈모를 경험하고 있고, 더 이상은 못버틴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다. 그때 나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 있었는데, 마법과 같이 어느 항공어플에서 메시지가 오더니, 멜번항공권을 세일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전철안에서 항공권을 예약했다. 회사에서 안보내주면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였기에, 일정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2주후 나는 멜번을 십수년만에 가게 되었고, 내 몸은 도착과 동시에 치료가 되었다.


멜번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일본 변호사를 친구로 만났다. 그리고 그 친구의 반강제적 요청으로, 나는 일본에서 저렴한 유학비용에 엄청난 혜택을 누리면서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가깝지만 먼 나라인 일본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본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정말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했다.


제대와 아르바이트, 사장님의 한마디가 나를 멜번으로 이끌었으며, 멜번에서 다시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그 계기로 회사에 입사해, 결혼도 했다. 계획된 삶은 아니였지만, 모든 것이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느하나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다. 만약 내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면, 멜번을 가지 않았다면, 그 일본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전부 우연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반드시 나에게 도움주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임을 믿는다.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려운 현실일지라도, 반드시 그러한 어려움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결과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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