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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엔 좀 변하면 안될까

그 두번째는 교육

by 하찌네형

대한민국의 교육.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그 어린나이부터, 교육=입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들.


원래는 현 세상에 모든 만물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에 그 속 뜻을 품고 있을 것인데, 지금의 교육이란 세상의 흐름과 이치를 깨닮는 것과는 상관없이, 남들보다 뛰어나게, 남들과 다르게, 그래서 좀 더 나은 미래의 삶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속에 주입되는 교육으로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엄청난 압박속에 내몰린 아이들이 대학을, 직장을 다녀도, 어려서부터 몸에 습득된 타인과의 경쟁심리는 쉬이 없어지질 않아, 평생을 남과 비교하며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며,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개인의 이기주의는 세상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근간이 되는 것, 그래서 내가 가진것은 절대 놓치 않으려는 것, 누군가가 건들이면 안되는 것으로 되 버린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회에 나와있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좋은 성적 =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 좋은 연봉 = 행복한 가정. 이 인과관계가 얼마나 성립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런 경우보단 그렇지 않은 경우가 쉽게 보이는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물론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남들보다 수월하게 주어진다는 것에,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그럼, 인생의 목표는 좋은 회사를 들어가는 것일까.

내 윗대의 어른들은 말한다. 좋은 회사를 들어가야, 좋은 연봉을 받고, 결혼도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건 맞게 말한 것인가. 어렸을때 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들어 온 말임에, 당연히 사회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 배워왔던 나에게, 그리고 지금도 암암리에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나에게, 이건 맞는 말인가, 자꾸 물어본다. 그렇게 내가 해야 되는것인가 하고 말이다. 왜 세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스템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하는 것인가 말이다.


인생의 목적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좋은 연봉이 아니라고, 40대가 되기 전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라 생각했는지, 내가 산 아파트가 매년 시세좋게 값이 오르는 것에 기쁨을 누리고, 통장에 찍히는 그 숫자들과 좋은 자동차에 만족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어렸을때 그렇게 남들과 경쟁하며 자라 온 과정의 결과라는 것에, 나는 만족해야 하는가.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 온, 그래서 부모님께 [그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절이라도 해야 하는게 맞는건가.


나는 이렇게 밖에 방법이 없었나...




나는, 내 아이는,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있는 학생들은 이렇게 자라지 않았으면 한다. 이렇게 경쟁에 내몰려, 이거 아니면 안된다 식의 교육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학교의 좋은 학생은, 대학을 많이 보내는 학교가 아니라, 영어 수학 점수가 높은 학생이 아니라, 오롯이 학생을 위하며 학생중심에서 생각하는 학교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아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영어 수학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남과는 어떻게 교류해야하며, 자연과 동물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학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무 죄책감없이 쉬이 과자나 아이스크림 봉지를 바닥에 버리는 아이들이, 영어수학을 잘한다 한들, 어떻게 사회에 도움이 될까 걱정스럽다.


물론 지금의 입시제도에서 보면, 상당히 이상적인 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많은 교육자들이 오래전부터 이런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해 오고, 지금의 입시제도를 없애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보이지 않은, 아니면 너무나 잘 보이는 기득권들에 의해 항상 부딪쳐 왔겠지만 말이다.




세상에 나와있는 방법은 많다. 교육에서 선진국이라는 핀란드나 독일의 방식을 점진적으로 도입해도 무방할 것이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하면 될 것이다.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방법은, 멀쩡한 보도블럭을 갈아엎는 일보다 값진 것이 얼마든지 있다. 공부를 함에 있어서, 차별은 있어선 안된다. 돈이 많건 적건, 교육의 기회는 공평해야 하며, 대학에 들어가도 마찬가지 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들어하지 않도록, 국가는 그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에 나는 어느정도 찬성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교육재단과 학원에 배를 불리는 것만 계속 진행할 것인가. 교육은 장사가 아니다.




영철이는 지난주에 미적분 들어갔다고 하더라.


우연하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엄마와 아들. 엄마의 입에서 뭔가 답답한 듯 한 한마디가 나온다. 아들은, 어림잡아 이제 중학교 1~2학년은 되어보인다. 아이는 항상 그런말을 하는 엄마가 익숙한 것인지, 아무 표정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지만, 그 모습이 씁쓸할 것은 기분탓인 걸까.


아직 미성숙된 아이들이다. 나이 40줄에 들어서니 알겠고, 나도 아이가 있어보니 알겠더라.

하지만, 미성숙된 많큼, 그 가능성은 무한함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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