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과 후회
내가 좀 돈을 보탤테니, 제발 차 좀 바꿔라
내 16년된 차가 맘에 안드셨는지, 아니 이제는 답답하신지, 아버지가 어느날 말을 꺼내신다.
"그런게 아닙니다. 아직도 문제없이 잘 나가는데 바꾸기도 좀 뭐하고 해서...."라고 하지만, 이번 기회에 아버지는 차를 바꾸게 할 모양이다. 아마도, 둘째가 곧 태어날텐데, 에어백도 두개밖에 없는, 카시트를 고정하는 ISOFIX도 없는 내 차에 대해, 못내 답답해 하시는 눈치시다.
사실 돈이 없는것도 아니다. 수년전에 차를 바꾸기 위해 큰 돈을 모았는데, 매년 사지못하고 적금을 갱신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불연듯 나에게 변화가 온 그 시점일 것이다. 무엇이 삶에서 중요한건지를 생각하기 시작한 그 시점 말이다.
한마디로 잘 살고 싶었다. 어디다 내 놓아도, "아, 정말 잘 살고 있구나"라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굉장히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서 였기 때문이다.
그냥 무턱대고 잘 살기 위해, 내 주변을 돌아봤다. 그 조차 여유가 없었던 30대초중반을 지나면서,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진 않나, 내 연봉이 높아지진 않나, 나도 좀 좋은차를 몰아봤으면 좋겠다...라는 뭔가 물질에 대해 내가 사로잡혀 있음을 깨닮았다. 나는 '누구나 그렇지 뭐, 다른가?'라고 슬쩍 피하려 했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 다는 것이 확실해 진 지금, 난 그런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흥미가 없다.
다소 인생의 흥미를 잃어버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과학의 발전을 통한 삶의 풍요로움을 충분히 누릴 수도 있으며,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물질적 만능주의를 몸소 체감해 보는 것도, 그 나름대로 재미면 재미일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부분에서의 재미를 너무 일찍 잃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쓸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 돈이 필요했고, 적지 않은 돈이였지만, 내게는 당장 필요한 돈은 아니었다. 나는 별 고민도 하지 않은채, 그를 위해 돈을 사용했다. 그리고, 내 마음은 굉장히 편한해 졌다. 나는, 나를 위해 쓴 돈이 아님에도, 아무런 걱정하지 않고,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도와줄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차를 샀다면, 난 이런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제 내 생각은 잘 살아야겠다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후회없이 살아야 겠다]로 바뀌고 있다. 사람은 때가 있기에, 나에게도 언젠가 마지막이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기전에 무엇이 가장 두려운지 생각하니, 나에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이나 후회]였다.
이 아쉬움과 후회안에, 좋은 집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이나, 좋은 차를 타고 다지니 못한 아쉬움 같은건 없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할때, [이걸 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는 나중에 아쉬워 할까 안할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뭔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함을 느꼈다.
판단은 깔끔했으며, 행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부모님에 대한 것들도 하나씩 [도장깨기]를 했다.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이라던지, 저녁 퇴근길에 아버지를 불러 술한잔하는 등, 나중에 못해봤다고 후회할 법한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버킷리스트같은 거창함은 없다.
그리고, 기록보존을 업으로 살고있는 친구가, 엄마와 아빠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불연듯, 나는 엄마와 아빠의 동영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였다. 기발한 생각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소 낯 부끄러운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때문에 아직 많은 동영상을 저장하진 못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진행중이다.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런 동영상과 술한잔으로, 큰 눈물 쏟아가며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의 40대의 인생의 참 맛. 누구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20대를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매력적인 시간은 결국 한순간이였다. [나에게도 그럴때가 있었지...]라고 추억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다. 감상에 빠져 있다가, 지금의 아름다운 시간을 잃어버릴 수 있기에, 얼른 일어서서 지금의 때를, 순간을 즐겨야 할 것이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따위의 다분히 감성적인 질문은, 나의 감정을 소모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과감히 제껴보려고 한다. 실현가능성이 1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하다보면, 나중에, 멀지만 너무 가까운 미래 어느 순간에, '이 정도 살았으면 됬어. 잘 살았다.' 고 생각되지 않을까.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
아마도 이번에는 차를 바꿀지 모른다. 아내는, 이제 우리가족을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는 차로 바꿔야한다고 했다. 이것만큼, 나의 마음을 쉽게 움직인 표현도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블랙박스의 영상들은 나에게 [가족보호]라는 투철한 사명감을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