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잡 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내가 초등학교때, 당시 학교앞에서 판매하던 둘리아이스크림이 50원이였다. 50원이라니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방과후가 되면, 대부분 아이들이 학교앞 문구점으로 달려가, 아폴로나 쫀득이와 같은 먹거리를 사곤 했었다. 또는 문구점 앞에있는 조금한 오락기나 종이뽑기등, 문구점은 당시 놀거리가 풍족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참새 방아갓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이 몰리다보니, 문구점 아저씨는 누가 얼마를 내고 그것을 가져가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고, 또 이 아이들중에 혹시나 돈을 내지않고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지 않나,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아저씨간에 신뢰란 없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분명 아저씨에게 50원을 주고 둘리아이스크림을 샀었다. 버스차비로 항상 50원(당시 버스비는 70원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짜리를 가지고 있던 나는, 그 동전을 아저씨에게 건낸 기억이 확실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나를 돈안내고 먹는 아이로 몰아세웠었고,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핀잔을 주었다.
나는 억울했다.
분명히 냈는데 내지 않았다고 하는게, 당시 CCTV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아저씨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50원을 내기에, 내 주머니사정을 그렇게 여의치 않았다. 족히 30년은 지난 일임에도, 그때의 그 기억이 어린 나에게 얼마나 억울했던지, 아직까지도 생생히 그날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사회에 나오니, 억울한 일 투성이다.
내가 행동한, 말한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와 그 사람들이 다르다 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이다.
다만, 이에 대한 해결이나 처리방법에 대해, 아직 사회는 성숙하지 못하다 생각한다. 사람간의 의견차이 임으로 정답이 없는 건 알겠지만, 그래서 해결책이 마땅히 없는 것도 알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괴로워한다. 해결책이라기 보단,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거나, [너는 돈이 있으니까. 너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위에 있으니깐. 너는 남자니깐, 여자니깐..]등등의 뭔가 차별적인 지위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까.
심각한 억울함을 당한 사람은, 쉬이 정상생활로 돌아오지 못한다. 주변에서 [한살이라도 더 먹은 너가 참아야지 어쩌겠어..]와 같은 위로의 말을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고, 혼자서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로 계속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쉬이 그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몸의 고통은 약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신의 고통은 아무리 약을 먹어도 쉽게 치료되지 않고 계속 악순환이다.
이미 억울함으로 고통받고, 그 얼토당토않는 잣대로 또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위로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오해로 고통받는 사람의 심정은 이해는 한 것일까. 그냥 나만 괜찮으면 된다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한 검사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살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그 억울함을 해결했다고 하는것이, 바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을 많이 보고 난 이후라고 했다. 재심을 통해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무수한 억울한 사연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재심을 통해 억울함이 밝혀졌다 하더라고, 그래서 보상을 받았다 하더라고, 그 치유될 수 없는 상처는 어느 누가 감싸줄 것인지를 생각하면, 자신의 억울함은 소소한 어린애 장난처럼 여겨질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치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에이...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겠지. 이번일을 통해서 다시 또 성장하는 구나.]라고 받아들이고자 했다. 물론 말과 행동과 나의 정신은 별개다.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맛있다..]라고 먹는 것과 같다고 할까.
다만, 확실한 것은 있다. 자기만 겪는게 아니다. 무수한 오해들이 있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아쉽지만, 그 고통을 받는 시간은 온전히 본인에게 제 2차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억울함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계속해서 본인을 옥죄어 오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고통에서의 내가 찾은 하나의 해결책은, 그저 좋은 일로 잊는 것이다. 삶이 항상 힘든일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쁜일만 계속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또 좋은일도 나에게 올 수 있다. 그때, 자신이 [그래. 그런일도 있었지만, 참고 사니, 이렇게 좋은 일도 오긴 오는구나..]라고 이겨내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나의 생의 마지막날을 떠올려 본다면, 이런 일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억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