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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Jun 24. 2020

갑과을의 상생이 가당키나 한가!!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바라보며.

내가 대리~과장으로 근무하던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회사마다 [상생팀]이란 게 만들어졌다. 팀의 특징이야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사의 1~2차 공급업체와의 상생 혹은 공생을 목적으로, 방법을 찾아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 그런 팀이었다.  통상 프로젝트 형식으로 팀이 꾸려지곤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누군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서,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기 쉽지 않았다. 혹시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 굴지의 대기업과 상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결국 [을]은 [갑]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상생의 최종 목적은 [갑]의 영생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스갯소리지만, 한 번은 그 회사에 감금(?)이 된 적이 있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좋은 아이디어를 내어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그런 아이디어가 안 나왔다는 거다. 그래서 나올 때까지 방에 가둬두고 하루 종일 회의만 했다.

상생......... 이였지만, 이럴 때, 상생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생각했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서, 양쪽 모두 행복한 결론은 아쉽게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비영리 집단이나 NGO단체가 아니기에, 누구나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지, 남의 어려움을 봐가면서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회사라는 영리 집단은 철저한 이익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며, 그 이익이 결국 자신의 성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남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다.


정말 없을까.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외부기관의 교육과정에서는 들은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경우였다고 기억한다.


사례 1. B회사는 A회사에 볼트를 팔아야 했지만, 기존 볼트 납품업체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러자 B회사에서 A회사에게, 너트와 같이 구매해주면, 볼트와 너트를 세트로 하여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결국, A회사도 저렴한 가격으로 볼트와 너트를 수급할 수 있었고, B회사 역시 볼트에 너트까지 판매할 수 있었다.
사례 2. A회사는, 높은 기술력을 가진 B회사의 볼트를 구매하고자 했으나, 그 품질 좋은 B회사의 볼트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B회사가 추가 투자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A회사는 B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게 되고, B회사는 투자비용을 지원받아 순조롭게 볼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생각해보면, 오래전 인터넷에 의한 정보 활용도가 훨씬 저조하던 그 옛날에는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구석이 없을 정도로, 모든 영업망을 포함하여 회사의 전체 시스템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 또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회사의 시스템과 연결하기에는 적절치 않을 수 있지만,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상당히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사례 1. 김밥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요즘, 옆골목에서 리어카로 김밥을 판매하는 B 씨로 인해 매출이 줄었다. B 씨의 김밥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이에, A 씨는 B 씨를 채용하였고, B 씨는 더 이상 리어카에서 김밥을 판매하지 않고, A 씨의 김밥집에 취업해 김밥을 만들어 팔게 되었다.
사례 2.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폐지를 줍는 A 씨에게, 대학생 동아리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A 씨의 리어카에 동네 식당의 광고판을 달게 했다. 이에, A 씨는 광고판으로 인한 수익이 생기고, 식당도 매출이 올랐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어제오늘 언론에 나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공항공사에 취업을 준비하는 준비생들에게 도리어 역차별을 발생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처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그 표면적인 내용만을 이해한 채, [고용이 안정되니 좋은 일이며, 정규직화로 인한 자신의 업무의 숙련도 및 책임감도 높아질 것 ]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해 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 깊은 속내를 다 알지 못하지만, 또 알려진 것들이 전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18년 기준으로 450명을 채용하는데 3만 명이나 몰린, 대학생의 선호 공기업 1위에 대해, 누군가는 그런 치열함 없이 입사를 할 수 있었다면, 그로 인해 준비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같이 사는 방법은 없었을까.

어느 한쪽만 행운이라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그 순간에, 한쪽에서는 안타까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씁쓸함을 느끼며, 결국 서로 같이 잘 사는 [상생]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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