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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Dec 08. 2020

굳이 적을 가까이 할 필요는 없다.

회사내의 적을 향한 대처법

회사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드시 있다.


일전에 A과장이 내가 와서, 같은 자리에 있는 B과장이 자기를 노골적으로 싫어한다고 한적이 있다. 사실 대놓고 '나 너가 싫어'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회사생활에서 마주치면서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감정들, 그리고 이상한 기류를 통해, '아 저사람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괜한 것에도 노골적으로 대한다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한번은 B과장과 커피를 마시며, A과장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B과장이 왜 A과장을 싫어하는지를 말하는데, 사실 그 내용이 그리 틀리지 만은 않았다. 나도 그런 A과장에 성격과 태도가 썩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건 아니었는데, B과장은 그게 싫었던 거다.


이와 같이, 회사내에서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다. 분명 나를 좋게 보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지만, 사실 기회가 된다면, 왜 나를 싫어하는지에 대해 들어볼 필요는 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이 약점이 존재한다. 그 약점에 대해, 스스로에게 관대하게 하는건 아닌지, 본인은 잘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해서, 누군가 옆에서 '그건 좀 잘 못된거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의미로 너무나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냐'는 식으로 기분나쁘게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쯤은 새겨 들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번은 이랬다.

C사원과 D사원의 사이에서 이상한 기류가 느껴져 그 이유를 살펴보니, C사원이 뿌리는 향수가 문제였다. 그 냄새가 너무 독했는지, D사원은 그것이 불만이였던 것이다. 사실, C사원의 향수가 찐하긴 했어도 뭐...그렇게 맡기 싫을 정도는 아니였지만, 사람에 따라 그 향기가 지독한 냄새가 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것 부터 나 자신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가깝게 지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쳐낼 필요도 없다고 본다. 가깝게 지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력해서 가깝게 지내려 하는 나의 노동력 소비가 너무 커, 그다지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 나에게 잘 대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떨까. 사실, 그런사람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그 웃음이, 그 친절함과 젠틀함이 진실된 것인지, 아니면 예의상 하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생활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당해 힘들어 하는게 대부분 이다.


B대리가 퇴사를 한다. 그런 B대리의 업무를 고스란히 윗선인 C과장이 물려받았다. 사실 C과장도 업무가 많아 스트레스가 상당했지만, B대리가 지방으로 급하게 이사를 해야 한다해서, 퇴사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C과장은 B대리의 사정을 잘 이해했고, 이사예정일을 일주일 남겨놓고 좋게 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퇴직 당일에서 서로 그간의 정이 있어 울고불고...B대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하곤 했었다.  그러고 한달 뒤, B대리에게 퇴사선물로 보낸 기프트콘 선물이 배달된 곳은, 이사한다던 곳이 아닌, 기존 주소지였다. C과장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맛없는 음식은 먹은 후에는 후회가 크지 않다. 이미 먹기전에 맛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지만 반대로, 맛집이라고 일부러 찾아간 곳이 실제로 맛이 없을때 오는 그 상실감과 비통함은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내가 이걸 먹겠다고 이 먼길을 와서 이렇게 기다렸단 말인가..'하고 말이다.


사람도 똑같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당했을 때는 '그래, 저사람은 나를 싫어하니깐...이해해..'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믿고 따르고, 아끼는 사람에게 당하면, 그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저 자식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말이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을 내 주변에 두는 것에 대해서, 나는 잃는 부분보다 얻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우상의 황혼]을 보면, [적의의 정신화]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없애는 것 보다, 내 주변에 두는 것이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야당이 있어야 정부와 여당에 발전이 있으며, 북한이 있어야 대한민국이 군사력은 높아질 수 있다. 즉, 모든것이 이상적으로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환경이, 굳이 나의 발전에 비교해본다면, 득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그런 원론적인 얘기야 누구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이러한 불편하고 답답한 환경속에서, 그런 꼰대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도 좋아할리 만무하고, 고리타분하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딱히 방법은 없다. 회사에서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회사는 특수한 목적에 의해 불가피하게 만나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순수하지 못한 목적으로 만든 사람들임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이 깊게 자라나기는 쉽지 않다. 함부러 판단하고 쉽게 행동하지 말자.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심한다고 나쁜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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