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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ug 07. 2023

여름의 팡파르_스파클링 와인

리슬링 젝트, 샴페인, 까바

  창밖엔 확실한 여름이다. 여름 햇빛의 거센 융단 아래 세상은 비로소 선명해진다. 원래 난 이런 색이었어라고 말하는 나뭇잎은 초록! 시린 하늘은 파랑! 구름은 하양! 소리지르며 자신의 고유한 색을 뿜어 눈앞에 통통 튀어 다닌다. 신이 난 컬러들의 찬란함에 감탄하다가도 이내 살짝 눈이 시려온다. 아찔하게 선명한 컬러들 덕분에 시린 눈을 잠시 감으며 색이 남긴 여름의 잔상을 음미해 본다.



  어럽쇼. 눈을 감으니 이젠 귀가 바쁘다. 그렇지. 세찬 매미소리. 귓가를 타고 들어온 매미소리는 이내 내 귀속 가운데 자리에 버젓이 자리 잡았다. 그래 너도 여름이 맞다. 다시 눈을 뜰 수밖에. 눈앞의 초록도 빛을 받은 부분의 선명한 초록과 뒷면의 검은 초록 양면을 품고 있듯, 매미 울음소리도 쨍쨍한 높은음과 묵중한 음이 함께 쏟아진다. 여름의 확실한 bgm은 그렇게 온 거실을 차지한다.



  여름은 아무래도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 같은 계절이 분명하다.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잠시도 내 눈과 귀를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내 살을 살살 건드리며 땀을 나게 만드느라 바쁘다. 아무래도 여름에 반갑게 반응하는 나를 알아채고 타깃으로 삼은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있나. 더운 여름에 태어난 덕분에 여름에 아량이 넓은 나를 알아채고 누울 자리를 야무지게 챙긴 여름을 온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는 기꺼이 여름 하오의 찬란한 패배자가 되려 한다. 이왕이면 나도 쨍한 여름의 무드에 올라타며 선명하고 우아하게.


  

  선명한 여름의 색과 매미소리의 bgm에 기꺼이 응답하는 나만의 방법은, 냉장고로 가는 일이다. 지금 냉장고는 치열한 전시상황이다. 네모나고 둔중한 문을 사이로 여름의 열기가 냉장고의 냉기와 치열한 대치를 이루고 있다. 나는 여름도 사랑하고, 시원함도 사랑하는 중립국이므로 이 대치를 화해시키는 부드러운 손으로 문을 가볍게 열어준다.



  그 안에는 내 사랑, 내 여름의 사랑 스파클링 와인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어떤 날은 스페인의 까바(cava)인 날도, 어떤 오후는 독일의 리슬링 젝트(Riesling Sekt)인 날도, 프랑스의 샴페인(Champagne)인 날도 있다. 나는 냉장고에서 여름 스파클링 와인 한 병을 손에 쥐며 확신한다. 여름의 확실한 행복이 내 손에 선명히 쥐어져 있다는 것을!



  오늘은 가볍게 모젤 지방의 리슬링 젝트(Winzersekt). 초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와인샵에 갔을 때 추천받은 디히터트라움 리슬링 젝트(Dichtertraum Riesling Sekt)는 복숭아의 과실과 시트러스가 우아하게 조화된 드라이한 스파클링이다. 처음 마신 후, 이번 여름을 위해 몇 병 사두었더니 이 녀석 덕분에 내 여름이 썩 괜찮아지는 순간이 잦다.



  평소에 아끼던 그릇을 찬장에서 꺼냈다. 포도모양의 흰 도자기에 위 부분은 파란 꽃무늬가 그려진 작은 접시가 오늘은 왠지 더 물은 머금은 듯 윤기가 난다. 연두색 샤인머스켓을 절반씩 썰고, 연두 셀러리도 엄지손톱 크기로 잘라 함께 놓았다. 가운데는 둥글고 뽀얀 흰색의 부라타 치즈를 놓으니 이미 눈에 상쾌한 즐거움이 담긴다. 소금 톡톡, 올리브 오일 한 바퀴, 그리고 여름의 가벼운 신맛을 담은 화이트 발사믹을 한 바퀴 두르는 내 손은 가끔 불어오는 여름의 살랑이는 반가운 바람만큼 가볍다.



  팡! 시원한 파열음과 함께 병 안에 담겨있던 여름이 튀어나온다. 황금빛 리슬링이 샴페인 잔에 경쾌하게 담긴다. 오늘따라 기포감이 여름의 에너지만큼 힘차게 올라온다. 즐거운 눈을 따라 발랄한 버블과 싱그러운 연두색 시트러스향 사이사이를 복숭아가 생기 있으면서도 우아하게 넘나드는 한 잔이 머금어진다. 여름의 발랄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기다란 병과 투명한 잔에 물방울이 맺혀간다. 오가는 대화, 보사노바 풍의 재즈, 그리고 여전히 세찬 여름의 햇빛에 튀어 다니는 선명한 색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bgm인 매미소리가 온 거실에 울려 퍼진다. 여름의 팡파르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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