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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Dec 14. 2023

인사를 건넨다.

올해에게 건네는 인사 life long learner

  겨울의 묵직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참 이상하게도 겨울의 어둠은 두 어깨에 쌓이고는 이내 눈 녹듯 스며든다. 나는 곧 순응한다. 하루의 막이 까맣게 내렸다. 올해도 이렇게 막이 내린다.



  어둠에도 불구하고 네모난 빛은 제법 힘이 세다. 15인치 직사각형에서 응축된 빛은 내 눈과 얼굴을 반사시킨다. 가끔 눈을 크게 떠서 동공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한다. 문득 오른쪽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와 숫자에 놀란다. 오후 9:17. 오후 4시쯤 자리에 앉았던 것 같은데 벌써 9시구나. 도무지 곁을 내어주지 않는 시간이란 녀석은 늘 이렇게 주도적이다.



  모니터 안에는 빼곡한 글씨들, 표, 숫자들이 가득하다. 바야흐로 기말고사 시즌이다. 이번 학기는 같은 과목을 2개 분반에서 수업했다. 2분 반의 수업 일자는 달라서 각 챕터의 중요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2개의 서로 다른 유형의 문제를 내느라 고심하는 중이다.


  

  "이런 문제들은 처음 만나봤어요. 강의 시작할 때 말씀해 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이론을 정확히 배우고 자신의 필터로 걸러보길 바란다는 말씀. 그리고 언젠가 적절한 상황에서 여러 이론 중 필요한 것을 골라 쓰길 바라신다는 그 말씀이 문제에서 보였어요."

물론, 시간이 부족했다는 피드백은 덤이다. 그럼에도 가끔 이렇게 내가 했던 말을 귀 기울여주고 내가 들인 공을 느껴준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이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기대하지 못한 뿌듯함이다.



  시험도 내가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강의여서 정성스럽게 준비하려 한다. 이론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문제, 해당 이론을 내 삶에 적용하는 문제, 해당 이론에서 찾은 나만의 시사점을 묻곤 한다.



  해당 이론의 명칭이나 개념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하면서도 학점의 변별을 위해 사용하는 기술이 들어간 문제이다. 나조차도 강의 중간에 문득 떠오르는 사례를 설명하면서 "제가 요즘 명사가 생각이 안 나요. 그 유레카! 하셨던 분 아르키메데스... 맞지요?"하고 물리학과 학생을 한번 쳐다본다던지 "그 애플 창업주, 그분.." 하며 학생들에게 구원의 눈빛과 당황스러워 달아오른 붉은 볼을 내비쳤던 적이 많다. 아마 '교재 273쪽에 기재된 명칭만을 정답으로 처리합니다'라는 단서 문장을 단 문제를 만난 학생들의 볼도 다소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질 수 있겠다. 출제자도 수험자도 우린 다 비슷하다. 다만 가끔 역할이 다를 뿐.



  내가 좋아하는 문제는 이론을 제 삶에 적용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면,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문제라면 각 8단계에서 획득할 수 있는 덕목을 모두 보기에 제시한다. 그리고 문제는 시작된다. "이 중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가치 있는 덕목을 한 가지 고르고, 그 덕목을 위해 내가 스스로에게 어떤 일을 해주고 있는지 쓰시오." 또는 "여러분은 이번 수업에서 원하는 학점을 획득했습니다. 보기에 제시된 귀인 양식 중 내적 귀인을 골라 스스로를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세요.", "아래 4가지 강화계획을 보고, 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더 효과적인 강화계획을 고르고 그 이유를 자신의 성향과 관련지어 쓰시오."와 같은 문제가 그렇다.



  일단 용어가 제시되어 있기에 볼에 붉은 열기를 더하는 설단현상에서 자유롭다. 가끔은 쉽게 가는 문제도 있어야지 싶다. 우리 삶이 그렇듯. 더욱이 내가 바라는 건, 나와 분리되어 책 속에 2차원으로 박혀진 이론이 내 몸에서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주고 싶어서이다.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공부를 하며 나는 나에 대해, 내 경험에 대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해상도가 높아졌다. 공부는 눈에 보이지 않아 덮어두었던 의미들을 핀셋으로 집어 내게 보여줬다. 공부를 통해 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불안정 회피애착을 형성한 사람이고,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해 왔는 것. 글쓰기와 설명에 효능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고, 다수와 관계 맺긴 어렵지만 일대일로 맺는 관계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정체감 유예와 성취의 MAMA곡선을 그리며 살고 있고, 자주 좌절하면서도 낙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까지. 그래도 된다고, 나에게 공부는 말해주었다.



  공부는 내게 나를 구석구석 살펴주며 알아차려주는 일, 내려앉아있던 먼지를 털어주는 일, 몰랐던 나를 발견하여 윤이 나게 닦아주는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주는 일. 그게 내겐 공부가 준 선물이다. 그 경험을 15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와 함께 배운 사람들에게 살짝 보여주고 싶었다. 내게 좋은 걸 상대에게도 좋다고 하는 게 꼰대력 1순위라고 하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는 그냥 왕꼰대가 되어도 좋다. 어쩔 수 없다.



  기말시험은 4개의 챕터가 시험 범위여서 5 챕터를 범위로 했던 중간시험보다 5문제가 줄었다. 물론 그렇게 보이기 위해 5번의 (1), (2) 이런 숨은 문제를 넣은 꼼수는 알아도 모른 척해주기를 바란다. 5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불쑥 말해버렸기에 이렇게 치졸한 방법을 써서 그 말을 지키려고 했던 마음을 꼭꼭 숨겨둔다.



  20문제는 20문제이기에 마지막 문제가 끝나고 시험지에 1/6 정도의 공간에 하얀 여백이 생겼다. 시험을 보느라 수고했던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언제나 수업 시작하자마자 "안녕하세요, 출석 부르겠습니다." 하며 기계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고 수업 종료 시간을 겨우 맞추거나 약간 늦게 끝내고는 "수고하셨습니다."하고 도망치듯 강의실을 나오는 로봇 같던 나였지만, 지금은 겨울이고, 밤이다. 12월이다. 올해의 막이 서서히 내려온다. 지독히도 주도적인 시간은 또 나를 2024로 데려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15주를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지나가는 올해를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올해의 모든 날들에 하나하나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아니다. 과정이 늘 기쁘고 의미 있고 보람찼던 것도 아니다. 올해의 난 자주 좌절했고 도전했고 실패했다. 그 무게가 커서 자잘한 기쁨을 덜 누렸다고 생각한다. 수업도 그렇다. 시간 강사인 내가 학생 한 명 한 명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다. 이상한 내 성격 중 하나인데, 왠지 그러는 건 월권 내지는 선을 넘는 것으로 여겨졌다. 지루해하는 학생도 보았고, 과제마다 의미를 발견해 주어 수업에 감사를 표했던 학생도 있었다. 그럴 수 있다. 나라는 하나의 스피커에서 나온 의미라고 하여도 내 목소리로 실려 보내는 순간 각자의 마음에는 각자의 의미로 새겨지기 마련이니까.



 감사를 표했던 피드백을 떠올려본다. 같은 강의를 오랜 시간하고 있지만 책을 찾고, 파워포인트를 고치던 내 가을의 주말을 떠올려본다. 강의를 마치고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돌리던 중, 작고 귀엽게 솟아난 뿌듯함이 내 차 안을 가득 채웠던 가을의 저녁을 떠올려본다. 덕분이었다. 그 과정들 덕분에 내 2023년이 괜찮았다고, 그래서 내년을 기다릴 수 있겠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다.



   "삶의 희망과 낙관이라는 것은,

앞으로는 좋을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뿐만이 아니라

나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잘 살아온 올해의 나를 수집하여 칭찬해 주는 일은

새해의 나를 위한 든든한 선물이 되어줄 것입니다."



  시험지의 여백에 이 문장을 적었다. 그제야 실패, 좌절의 돌덩이만을 크게 들여다보았던 올해의 나와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함께 공부하며 괜찮았다. 덕분에 내년에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내 마음의 우물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른다.



  학생들도 그렇기를. 한 학기 동안, 1년 동안 지내온 시간들은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알기를. 올해의 나를 다독여 칭찬하고, 나와 화해하기를. 일개 시간강사는 종강에서야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 말로는 못하니까,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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