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옷 입고 신난 이상하고 철없는 아줌마예요

by 주윤

‘감사합니다!’

언제나 반가운 택배 상자를 뜯어보았다. 행여 내용물이 훼손될까 봐 커터칼을 움켜쥔 손에 각별히 섬세함을 더한다. 상자를 이어 붙인 테이프에는 칼날의 끝 부분만 살짝 닿을 수 있다. 그렇게 커터칼이 유연하게 스윽 미끄러질 수 있도록 경륜을 갖춘 압력을 가한다.



쨘~! 드디어 내 택배 내용물이 보인다. 오늘은 아이의 파랑 니트이다. 주문 당시, 나는 코발트블루의 쨍한 파랑에 앙증맞은 하얀 도트무늬가 보송보송한 질감으로 얹어져 있는 모습에 한눈에 반했었다. 배송도 빠르게 하루 만에 도착해준 것도 기쁜데, 드디어 실물을 영접하다니! 이미 나는 사랑에 빠졌다. 아~쨍한 파랑이 주는 시원함과 도트가 주는 클래식함이 어우러진 데다, 둘이 만나니 명랑하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난 쇼핑을 너무 잘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뭔가 어색한 이 기분. 뭐지? 그제야 택을 살펴보니 사이즈가 12y였다. 8살 아이가 입기엔 컸다. 배송 오류가 분명하다. 아이가 두 번 접어 입혀도 핏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교환을 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입혀야 하는 계절인데 교환으로 소요될 날들에 대한 계산과 교환을 신청하는 그 과정을 생각하니 이건 너무 귀찮다.



귀찮음은 자연스레 쇼핑몰의 미흡함에 대한 불만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불만이 짜증이 되기 전, 나는 다시 한번 겸손의 나를 부를 타이밍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설마, 이번에도?’



언젠가부터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여러 번, 자주, 잊을만하면 경각심을 주려는 듯, 주기적으로 잊고 빠트리고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내 손가락은 태연하게도 내 생각과 다른 곳을 누르고, 내 입은 자연스럽게 다른 말을 한다. 모둠회를 주문한다는 게 초밥 버튼을 누른 것도 나였고, 인터넷 장보기에서 요거트를 사려다가 배송비 때문에 이것저것 담았는데 정작 요거트는 결재를 안 했던 것도 나였다. 심지어 머리는 바닐라라떼인데 말은 아메리카노를 말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오 마이_!



더 부끄러운 건 나는 가끔 이렇게 뇌와 반응이 다르게 움직이는데 전산을 이용하는 쇼핑몰은 여간해선 틀리지 않더라는 사실이다. 나만 이렇게 노화된 것이 분명했다.



잦은 건망증과 실수와 기억력 감퇴로 나는 자주 미안했고, 짜증이 났고, 행동은 자주 번거로워야했다. 잦은 실수와 무안함 앞에서 나는 이게 노화인지 부주의인지 정확치는 않지만, 이런 내 실수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뇌와 행동의 불협화음을 어쩔 수 없는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자, 자책과 짜증 대신 겸손의 미덕을 덤으로 얻었다.

‘나는 메모리가 가끔 없어진다.’

‘내가 틀렸을 수 있다.’

‘내 기억이 확실치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엔

‘또 내가 잘 못 눌렀겠지.’



딩동댕동! 이번에도 나의 실수다. 10y를 산다는 게 내가 12y를 눌렀나보다. 쇼핑몰 주문내역에는 너무나 당당하게 12y가 입력되어있었다. 하~나도 저렇게 확실하고 싶다. 내 인생의 모토는 언제나 똑순이가 되는 것이었는데, 이젠 그저 총총하게만 살고 싶다.


나는 또 이렇게, 오늘도 겸손의 경험을 쌓고야 말았다. 이러니 내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의심하고 또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는 방구석 겸손과 의심의 철학을 실천한다.



니트를 교환하려고 다시 접는데, 사이즈가 안 맞는 것은 둘째치고 여전히 니트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예쁘네.’

하고 다시 펼쳐보았다. 그리곤 괜히 내 몸에 대보았더니 얼추 입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하고 한번 머리를 쑥 넣고 팔을 살포시 넣어보았다.

‘어...! 뭐지? 이 파리지앵 느낌? 괜찮다...!’



거울에는 코발트블루 바탕에 보송보송 입체감 있게 내려앉은 화이트 도트무늬 니트를 입은 내가 있다. 오~이거 썩 재미있다. 중년의 아줌마가 아동복을 입고 있는 이 이상한 상황과 비현실적인 선명한 파랑의 색감의 화학작용으로 거울 속 피사체가 요상하게 마음에 든다. 거울 속 마흔의 아줌마가 순간 명랑해 보인다.



이때부터는 모든 것이 이유가 된다.

‘내 옷장엔 다 파스텔이나 블랙, 화이트 계열 니트뿐, 코발트블루는 없지.’

‘봄이잖아!’

‘아니 슬랙스에도 어울리고, 흰 스커트, 청바지에도 괜찮네!’

‘포멀 하고 싶으면 진주 목걸이 해볼까? 오~ 괜찮네!’

그러다 결국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음~내가 입고 나서 아들 물려줄.... 까?’



그렇게 나는 코발트블루에 흰 도트무늬가 내린 아동복 니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곤 신이 나서 남편에게 이것 좀 봐~하고 보여주고 또 보여주었다. 남편은 질색팔색을 하며 그런 나를 부끄러워했지만, 난 이 이상한 상황에 팔랑팔랑 신이 나고 들떴다.

“부인, 입고 갈 때 아동복이라고 말은 하지 마. 행여 ㄸㄹㅇ인 줄 알 거 아니야.”

“뭐 어때~내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너무 선명하게 마음에 들어! 새롭게 보이잖아!”

아름답고 새로운 무쓸모에 대한 감탄이 아동복까지 미칠 줄은 몰랐지만, 나는 거울 속 새로워 보이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메모리는 잃고, 머리와 손과 입의 협응은 떨어져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중년이다. 또 한 번 나갈 때는 휴대폰, 한번 나갈 때는 차 키를 챙기지 않아 한 번에 나가는 일이 드문 마흔의 메모리 리스 아줌마이기도 하다.



동시에 나는 작지만 새로운 일에 팔랑팔랑 신이 나서 들뜰 줄도 아는 가벼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 가끔 나이의 무게와 엄마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나의 즐거움에 흠뻑 빠지기도 하는 철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 철없고 이상한 행동이 주는 상쾌함의 매력을 알고 좋아하는 데다 좋아하는 것들을 내 생활로 끄집어 오는 데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다.



아동복이 내게 그 철없는 사람을 끌어당긴 것이 분명하다. 늘 입던 엄마의 옷, 직장인의 옷, 중년의 옷이라는 중력을 살짝 거스른 기분은 짜릿했고, 나는 덕분에 야릇하고 우쭐하기까지 했다. 아이의 옷에는 엄마의, 중년의 의무감은 없었다. 나는 가벼운 유희와 둥둥 떠다니는 무중력 상태에 있었다.



아마, 나는 내일 외출할 때 코발트블루 니트를 입을 게 분명하다. 내일은 강의가 있는 날이니 블랙 슬랙스와 진주 목걸이로 포멀함을 줄 계획이다.



하지만, 블랙 슬랙스와 블랙 구두, 진주 목걸이라는 중년의 아이템으로 가렸더라도 내 니트는 명랑한! 그 이름도 선명한 코발트블루~블루~블루~에 흰 구름이 잔뜩이다! 내일 나는 포멀함에 장난기 어린 내면을 숨긴, 의뭉스럽고 명랑한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이상하고 흥미로운 하루를 보낼 것 같다. 벌써 이상하고 재미있을 내일에 대한 기대로, 내 마음엔 이미 호핑스텝이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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