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BTS는 되는데, 휴대폰은 안돼요?

by 주윤

“엄마, 저도 2학기엔 핸드폰 가져야 해요. 저도 관심이 있으니까요!”

아이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거지? 더욱이 핸. 드. 폰.인데?’

아이는 관심 있는 것이 생기면 반년 정도 그 놀이에 흠뻑 빠지는 특성을 보였다. 생각해보면, 나와 남편은 그동안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이라면 대부분 구해주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그 영향은 이렇게 휴대폰에도 당당할 수 있는 아이가 된 것 같다.



아이는 6살 즈음 도미노에 흠뻑 빠져있었다. 당시 아이는 쓰러지면 순순히 다시 하기도 하고, 세상이 무너질 듯 울며 화를 내면서도 노는 시간 대부분을 도미노 놀이로 채웠었다. 그때 나는 아이가 원하는 도미노 세트가 있으면 아마존 직구를 해가며 컬러별로 공수해주기도 했던 열성 엄마였다. 아이는 잠이 와서 살짝 피곤한 상태에서 만든 도미노가 무너질 때면 온 세상 비관을 짊어진 채 엉엉 울곤 했다. 이때 나는 연습의 가치를 운운하거나,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 말해주며 아이의 눈물과 화를 달랬다. 동시에 여러 번의 실패에도 다시 시도하는 행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치켜세우며,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기를 여러 번이었다.


아이는 유튜브에서 도미노 영상을 보고 여러 시도를 하기도 했다. 특히 아이가 고무밴드를 이용해서 도미노가 휙 날아가는 챌린지, 도미노로 브릿지를 만들어서 연속해서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챌린지를 성공했을 때 나는 내가 모르던 도미노 세상이 너무나 신기했다. 더욱이 챌린지 성공을 위해 몇 번이고 무너지는 도미노를 다시 일으켜 세웠을 아이의 과정이 대견하기도 해서 폭풍 감탄을 하기도 했었다.



아이의 도미노 취미 덕분에 나는 내가 몰랐던 도미노 놀이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도미노 놀이에는 집중력, 끈기,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보는 탄력성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도미노에 집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흐뭇했다. 물론, 실패해서 모든 세상의 불운을 다 떠안고 비관을 울부짖으며 화내는 아이의 모습에

‘아! 도미노 내일 버릴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는 6살 가을부터는 BTS에 빠졌었다. BTS는 참 오래도록 빠져있었는데, 거의 1년 반을 열성적으로 좋아했다. 처음엔 Dynamite를 유치원 선생님께서 보여준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이후 아이가 차에 타면 우리 가족은 BTS의 노래만 들어야 했다. BTS는 신곡에서 시작해서 데뷔 앨범까지 하면 정말 많은 곡이 있었고, 아이 덕분에 우리는 그 노래를 매일 들어야했다. 특히 Butter는 오리지널 버전 이외에도 hotter remix, bedtime remix 등 리믹스만 해도 여러 개였고, 연말엔 holiday remix까지 발표되었었다. 아이는 butter가사를 종이에 써가며 나에게 노래를 시키기까지 했는데 이게 나의 큰 허들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노래를 동요화 시키는 순수한 나에게 유려한 리듬, 그리고 영어 가사를 내가 소화했을 리 만무하다. 사람이 우스워지는 게 한 순간이라는 것은 언제나 진리였다.

(물론 “Smooth like butter like creaminal like~”여기까진 한다. 딱, 여기까지. 그다음부턴...)



부족한 엄마이기에 같이 노래를 불러줄 순 없었지만, 연말 시상식에 BTS가 나온다기에 밤 12시까지 아이랑 같이 공연을 기다리다가 같이 보기도 하고, 안되지만 Permission to dance 춤을 같이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UN공연 영상은 내가 봐도 너무 멋져서 일부러 아이에게 감탄하며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간혹 TV를 보다가 BTS가 나오면

“BTS다!”

하고 소리 질러서 아이를 불러 함께 보았다.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좋았다.



아이는 BTS 노래뿐만 아니라 춤을 따라 추기도 했다. 이건 정말 우리 집 웃음 버튼이었다. 사실 될성부른 잎은 어릴 때 나온다. 아이의 춤은 흥은 있으나...... 하긴, 내 몸이 리듬을 모르는 뻣뻣이인데 이런 부모 아래 그루브가 나오길 바라는 것은 과욕 중 과욕이다. 이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 흥과 멋에 취해서 시도 때도 없이 춤을 추곤 했다. 우리 가족들 앞에서는 그래도 괜찮은데 밖이나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다른 부모님도 다 계시는 데에서 갑자기 춤을 추는 아이를 보면, 그래,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그 영상은 매번 찍어두었는데, 지금 춤을 추지 않는 아이를 보면 그때 찍어두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주변의 시선 따위 없이 아이의 놀이로서 취미로써 좋아하는 것으로써 BTS에 흠뻑 빠져있었다. 나는 이때도 아이가 원하는 노래를 선곡하라며 차에 타면 내 휴대폰을 기꺼이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원하는 BTS노래를 선곡해서 나에게 들려주곤 했고, 뒤에서 멤버의 생일을 맞추는 퀴즈까지 내며 즐거워했다. 난 당연히 못 맞추면서도 “아들 엄마 생일은 알지?” 하고 묻곤 했다. 우리는 맥도널드 BTS set를 일부러 같이 사러 갔고, BTS 멤버의 고향을 말하는 아이에게 그 고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BTS라는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대화와 일상을 즐겁게 엮어갔었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그 시절을 기억할 때 구심점이 되어준다.

‘그때 우리 이거 좋아했었지.’

‘이거 어디서 먹을 때, 네가 이런 말 해서 너무 웃겼잖아.’

이렇게 함께 좋아했던 것은 힘이 세서 큰 자력으로 좋은 기분, 그때의 장소, 대화, 추억을 끌어당겨 보존해준다. 좋아하는 것 하나쯤 있는 삶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리고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함께한 이들에게 심리적 자산이 되어준다.



과연, 휴대폰은 나와 아이에게 함께 공유하는 좋은 것이 되어줄까?

아이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늘 함께 알아봐 주고, 구해주고 알려주고 함께 관심 갖던 엄마가 휴대폰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 과정에서 휴대폰에 대한 나의 우려를 눈치챈다면 아이는 휴대폰 사용은 숨겨야 될 것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내 손에서 놓는 시간보다 들고 있는 시간이 많을 만큼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한 나는 왜 아이가 휴대폰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대는가. 왜 나는 되고 아이는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어린 시절 휴대폰 노출로 인한 중독이 걱정된다면, 대부분 성인기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한 내 또래 어른 중에도 중독자는 있다. 나이는 면죄부가 되어주지 않는다. 비슷하게, 휴대폰 게임에 빠질까 우려하는 것을 보아도 시기를 늦춘다고 해서 중독을 억제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휴대폰 사용이 우려되는 것은, 아이의 성향과 관련이 되어있다. 아이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이 생기면 흠뻑 빠진다. 반복하고 또 하고, 파고들고 즐거워한다. 아이가 빠지는 것에는 늘 편안함에 새로움을 더하는 것들이다. BTS는 고정 멤버들이 매번 신곡과 remix를 발표하여 익숙한 멤버들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도미노는 고정된 도미노 조각들로 늘 새로운 챌린지 세트를 보여주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따라 해보고 싶은 동기를 부여한다. 익숙한 포맷에 새로운 모습은 언제나 이렇게 우리를 끌어당긴다.



휴대폰도 그렇다. 일단 익숙한 휴대폰이 손에 익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바다에 흠뻑 빠질 준비가 된 것이다. 사실 이 세상 재미가 다 여기 있다. 게임, 영상,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지인과의 대화와 통화까지. 휴대폰이 열어줄 세계는 강한 자력으로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며 날로 새로운 오늘의 블랙홀이다.


나는 아이가 이 거대한 재미의 블랙홀에 빠질 것이 우려스럽다. 혼자 빠지게 되며 나와는 이제 다른 세대로 나아갈 것이 두렵다. 나는 보수적인 중년이기에 아이가 아는 것을 내가 모르게 되며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자연스러운 이 시기의 문을 휴대폰이 열게 되는 것을 직감하니 휴대폰이 밉다.


또, 아이가 세상의 다른 취미와 흥미, 좋아하는 것들을 누릴 기회를 휴대폰이 뺏어갈까 봐 우려스럽다. 세상은 재미있는 게 참 많지만, 이 재미들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봄의 새싹들이 마른 가지에 연둣빛 싱그러운 전구를 켜 둔 것 같은 풍경을 보는 것, 여름 세찬 햇빛에 송골송골 땀을 내다가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 입 베어 물 때의 행복감, 가을의 마른바람과 시리도록 푸른 하늘의 반가움, 겨울철 눈꽃의 아름다움까지. 이런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더욱이 의미 있는 가족, 지인들과의 눈 맞춤의 대화와 그 대화의 과정에서 오고 가는 애정, 배려, 마음 나눔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따듯한 선물 같은 시간이다. 그리고, 도미노가 그랬고 BTS가 그랬듯이 아이가 자라면서 관심이 가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에 흠뻑 빠지는 것들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아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나 이지만, 나도 자주 스마트폰의 유혹에 덥썩 손을 잡는 나약한 사람이다. 실제 거대한 블랙홀인 휴대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뇌를 찍어보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발달된 반면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데 쓰이는 전전두엽의 발달은 둔화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뇌는 발달 과정에서 쓰이지 않는 영역은 가지치기를 한다. 높은 빈도의 스마트 기기의 사용으로 뇌가 감각적인 정보처리만을 위주로 작동한다면, 아마 우리의 뇌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시냅스는 가지치기를 해버릴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스마트 기기가 인간의 뇌를 파충류의 뇌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아이가 지금 발견해야 할 것과, 자라면서 좋아하게 될 것들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휴대폰이 뺏어갈까 봐 두렵다. 휴대폰이 아이의 시선과, 귀와, 손의 감각을 독차지하게 될 것만 같아서 휴대폰을 경계한다.



도미노는 되고, BTS는 되는데 휴대폰은 경계하는 까닭은 이것이다.

첫 번째는 휴대폰이 가져올 기성세대인 나와 아이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가 겁이 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휴대폰이 이 좋아하는 것들을 다 빨아들여 아이가 휴대폰만 좋아하게 될까 하는 우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발견하는 기회가 줄어들까 봐 그게 걱정이다. 아이가 자신을 실현하는 삶을 경험하지 못할 까 두렵다.


데카르트는 망설임은 악 중에 최고의 악이라 하였다. 그리고 행동을 머뭇거리게 하는 생각을 멈추는 일이 이성의 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어쩌면 대안 없는 걱정이 부모에게는 최고의 악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휴대폰을 2학기나 내년이면 사줄 것이 분명하니, 이젠 걱정이 아닌 실제 행동을 준비할 때이다.



첫 번째 걱정에 대한 내 마음의 준비는 이것이다. 나는 휴대폰보다 느리고 새로운 것에는 열 발 정도는 늦게 반응할 것이 분명하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배울 생각을 하더라도 더딜 것이 눈에 보듯 뻔한 중년의 엄마이다. 지금은 이런 내가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지만, 휴대폰을 만나는 순간 아이는 내가 모르는 세상을 아이의 세대가 가진 모습으로 흡수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격차는 생기고 점점 커질 것이다.



사실, 우리의 격차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나는 어쩌면 휴대폰에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기성세대가 거쳐온 방식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과거의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는 과거의 생각으로 성장해서는 안된다. 아이는 미래를 살아갈 세대이고, 나는 그 세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가 앞으로 나갈 길을 설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저 길을 비켜주고 아이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내 역할이고, 부모의 역할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어서 겁을 내느라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막는 것은, 자립을 목표로 하는 육아의 자세가 아니다.



빌 게이츠의 부모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문물에 흠뻑 빠진 아들을 위해 학교에 컴퓨터 교실을 마련해주었다. 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컴퓨터에 몰두하는 어린 자녀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녀를 믿는 마음이 더 컸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휴대폰이 아닌, 컴퓨터가 아닌, 걱정이 믿음을 밀어내는 순간에 자녀와 부모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휴대폰을 사주면서 우리의 가이드라인을 함께 정해봐야겠다. 그리고 간혹, 아이가 그 가이드라인을 어기더라도 가끔은 버럭 하지 않고 아이를 믿어주기도 해야겠다. 나는 아이와 그런 사이가 되고 싶으니까.



두 번째, 아이가 휴대폰만 좋아할 것이 걱정되는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쉽게는 내 호주머니에 좋아하는 것 하나쯤 넣고, 조금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아하는 것을 실천해보는 취미를 가진 삶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할 수 있는 삶은 자주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상이 힘들 때 내가 좋아하는 호주머니에서 쓰윽 꺼내서 순간 잔잔한 행복을 음미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리고 때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먼 거리의 흥미와 취미를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병행된 삶을 위해 애써서 시간을 내고 돈을 쓴다. 이렇게 내 호주머니 속 흥미와 먼 거리의 흥미가 밸런스를 이루는 삶을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오감의 경험이 중요하다. 내 생리적 심리적 상태에 귀 기울여야 하고 주변을 관찰하고 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위해서 지금도 진행 중인 주말 캠핑을 꾸준히 해 볼 생각이다. 남편 덕분에 시작한 캠핑을 아들도 참 좋아하는 데다,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자연에서 계절을 느끼는 그 시간이 참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고 아이와 공유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면 좋겠어. 휴대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열 손가락에 다 꼽을 만큼 많은 사람이면 참 좋겠어. 그러길 바라.”



부모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믿어주어야만 한다. 이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 두어 명쯤 있는 삶은 아름답다. 이러한 믿음은 아이가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 망설이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튼튼한 두 다리와 건강한 마음을 불러일으켜줄 것이다.



간단한 휴대폰이 너무 장황해졌다. 엄마는 늘 이렇게 걱정이 많다. 나의 이성에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이제 생각은 멈춰야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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