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우리 집 1학년 어린이는 학교에 빨리 가고 싶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한다. 스스로 어깨가 들썩하며 뽐내고 싶다가도 교실에서 해야 할 행동을 생각하면 긴장되기도 한다. 우리 집 1학년 어린이는 이번 주에 학급 도우미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급 도우미? 그게 뭐야?”
“번호대로 돌아가면서 학급 도우미가 되는데, 학급 도우미는 학급에서 친구들을 도와줘야 해요.”
“아~그럼 학급 도우미는 어떤 활동을 해?”
“보건실에 가는 친구를 함께 데려다 주기도 하고, 큰 어울림터나 컴퓨터실에 갈 때 친구들 앞에 먼저 바르게 서야 해요.”
“아~보건실에 가는 친구들이 도움이 필요하니까 그렇구나. 보건실은 어딘 줄 알지?”
“네! 그럼요.”
“학급 도우미~~~!!! 오~~~ 멋지네! 그렇지?”
“엄마, 근데 좀 긴장돼요.”
난 일단 ‘학급 도우미’라는 그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학급 도우미’라는 단어는 그 역할이 수행해야 하는 행동과 태도가 무엇인지를 잘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1학년 어린이도 그 명칭만 들어도 학급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되는 것 같았다.
학급 도우미에게 중요한 일이란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함께 보건실에 가주고, 쉬는 시간에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워주는 일.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먼저 여유분을 빌려주는 일. 이렇게 학급 도우미에게 중요한 일은 학급에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도와주는 일이 된다.
반장(班長)이나 학급 임원(學級任員)의 사전적 의미는 학급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때 중요한 일이란 무엇일까? 예전에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 반장이나 임원의 역할은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거나 선생님께서 교실을 비운 사이에 학급을 정돈하고 조용히 시키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자리를 비우실 때에는 으레 껏 칠판 앞에 나와 떠드는 친구들 이름을 칠판에 적었고, 그 이후에는 자리에 앉아서 친구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조회와 종례시간에 다른 학생들은 모두 앉아있는 가운데 단독으로 자리에 일어나 “차렷! 경례!”하고 말하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고, 학생들은 임원의 말에 따라 인사를 했다. 물론 특권과 함께 “반장이 되어서 그러면 되겠어!” 하는 두 배의 질책도 감수해야 했다.
생각해보면, 임원선거 때 발표를 준비해온 친구들의 연설문에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도와 좋은 학급을 만들겠습니다!” 하는 문장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학급 반장이 실천했던 도움의 방향은 친구들보다는 선생님을 향한 일들이었다. 다른 학급에 안내자료를 전달하는 일이라든지, 선생님이 안 계실 때를 대비해서 하는 일들은 결국 선생님을 도우는 일이었고, 이를 위해 학생들을 통솔했다. 선생님께서 안 계실 땐 칠판 앞에 나오거나 자리에 앉아서 떠든 친구들 이름을 적었고 선생님이 오시면 그 명단을 선생님께 알려드리는 일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을 도와 학급을 조용히 시키느라 반장 역할에 불만이 생긴 친구와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잦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친구들을, 그리고 반장의 교우관계를 돕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성숙한 성인은 어린아이의 일방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상황에 따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는 있다. 이때 성인도 어린이에게 “고마워.”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또 도움은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이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너무나 쉽게도 우리 학생, 어린이들이다. 상대적 약자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자명한 논리에 더하여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갖는 순기능은 정서적 건강과 지혜로운 행동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도움을 주고받는 어린이들은 감사(gratitude)를 경험하게 된다. 감사란 누군가가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 나를 위해 애써준 것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반응이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감사를 많이 느끼는 어린이들은 그렇지 못한 어린이에 비해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또한 도움을 주고받을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뿌듯함과 함께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형성된다. 또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고마운 마음과 함께 내가 받은 도움을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면 내가 받았던 도움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경험의 힘을 얻는다. 이것이 도움의 선순환이다.
실제로 나는 10살 남자아이에게 부탁을 했던 적이 있다.
“영석아, 이 바구니 좀 같이 옮겨줄래?” 했던 내 부탁을 영석이는 흔쾌히 들어주었다. 나는 도착점까지 애써서 함께 바구니를 들고 와준 영석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마워, 영석아. 덕분에 수월하게 왔어.”
그때 나는 영석이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 얼굴에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주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고, 실제 최근 가장 좋았던 경험으로 나를 도와주었던 경험을 말했다.
어른, 그리고 선생님의 도움은 눈앞에 필요한 도움이어야 하고 이때 어른이나 선생님은 분명히 어린이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어린이는, 그리고 학생은 나름의 노력과 애씀으로 돕는 일에 대해 뿌듯함을 느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순간에, 도움의 방향은 약자에게 향해야 한다. 학급에서 도움이 자주 필요한 대상은 아직 서툴러서 즐거운 서로의 친구들이 맞다.
반장이 학급 도우미가 되기 위해서 학교에서 어른들, 교사들은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동안 학급에서 리더십의 방향이 선생님을 향한 활동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학생을 향한 활동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힘에 부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차에서 관성의 힘을 이겨내고자 두 발에 있는 힘을 모두 주고 서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학급 도우미는 그 생각의 관성을 거스르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학급에서의 리더십의 방향을 바로 세워준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낯선 시선으로 익숙한 현상을 바라보고 이를 바꾸어준 학교의 신념이 마음에 든다. 이름 하나 바꾸었다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 하겠지만, 이름 하나에 의미가 바뀐다. 이름에는 생각과 의미가 담긴다. 이름을 바꾸는 데에 낯선 생각의 과정이 담겨있기에 의미가 있다. 생각이 담긴 명칭 하나를 보며, 아이의 학교 생활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제 1학년 학부모로서 나도 한 가지 다짐을 해본다.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의 학교 생활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
변화하고 있는 교실을 내 고루한 시선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가 겪는 지금을 최대한 나도 지금의 시선으로 이해하자.
그렇게 우리 함께 성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