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심리 인지주의 구성주의
교과서의 내용을 일상과 연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회시간에 지역과 나라 간 교류가 왜 필요할까를 공부하며 학생들에게 제 티셔츠를 까보도록 한다. 어린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입었던 티셔츠가 베트남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에서 왔음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냥 쿠팡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금강하류의 남부지역 교실구석에 앉은 우리는 이제 내 몸에 붙은 티셔츠에서 세계와 교류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교류가 없다면 우리 학교 급식판은 어떨까 구성해 본다. 넓은 밥과 국의 자리, 반찬 3개를 채우지 못한 앙상한 급식판에 아쉬움이 가득이다. 그나마 쌀, 된장국, 시금치, 배추김치, 콩고기로 마무리하는 게 최선이다.
"선생님, 저 새우 못 먹어요?"
"아, 요즘 귤 맛있는데."
여기저기 이렇게는 못 먹고 산다며 아우성들이다.
"그럼, 우리 휴대폰은 쓸 수 있을까?"
"오 마이갓!"
"우리 전화기 들고 다녀야 해?"
"삐삐 들고 다녀야 돼요?"
어디서 삐삐라는 말은 들었는지 참 신기한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은 가끔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여긴 것을 모르는 대신 어떻게 알지 싶은 것들을 알고 있는 알쏭달쏭한 존재들이다. 당황스러운 순간을 자주 만나게 해주는 매일이 낯설어 새로운 어린이들이 오늘은 교류 예찬론자들이 되었다.
교과서의 활자가 내 급식판과 만나고, 내 티셔츠와 만날 때 우리의 공부는 삶이 된다. 공부는 맑은 물에 녹아있는 소금과 같다. 작은 알갱이가 일상에 잘 녹아있어 눈으로만 보면 일상에 내린 소금을 알아차리기 어렵듯 교과서를 눈으로만 보았을 때 우리는 일상에 내린 공부를 알아차릴 수 없다. 숟가락을 들고, 검지손가락을 하나 들고 찍어먹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내 손가락으로 세상을 맛보는 것. 어쩌면 그게 배움일지도 모른다. 그때야 교과서에 가지런히 줄 세워져 있던 문장들이 내 일상과 만나 깨우침을 가져온다. 아하 모먼트. 그 깨우침의 과정들이 그래픽 카드 하나씩을 추가하고 서로를 연결한 덕분에 세상을 이해하는 해상도를 높여준다.
교사는 교과서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사람이다. 중요한 내용이어서 밑줄도 긋고 별표도 땅땅땅 치게 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이 문장을 가질 수 있을지 궁리한다. 어떻게 하면 이 문장을 어린이들이 제 필터로 걸러 제 말로 하게 할 수 있을까. 내용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세상에 통용되는 지식이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지식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아는 것만큼 중요한 건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당연히 제대로 알고 저대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중요한 일이 된다.
오늘도 교과서와 생활의 연결이라는 같은 궁리의 연속이다. (고민이라고 하기엔 좀 재미있는 생각들이기에 궁리라고 해본다.) 요즘 국어시간에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성격을 파악하는 단원을 진행 중이다. 교과서 속에 성격 파악이 쉬운 인물들을 만난 후, 나는 일상의 인물을 말과 행동을 분석해 보는 활동이 필요함을 느꼈다. 우리는 현실을 살기에. 현실 속 사람들의 성격은 어찌나 우주만큼 발견할 게 많은지! 그 세상으로 헤엄쳐가서 손가락에 찍어 맛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알면 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나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나를 나답게 살게 해 주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니,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믿는다.
딴에는 나름 용기를 낸 주제를 던졌다.
"선생님의 말과 행동을 보고 선생님의 성격을 분석해 보자면~"
사람은 자주 본 사람에게는 호의적이어서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고들 할뿐더러, 어린이들은 착하고 착해서 대놓고 나를 디스 하는 문장은 남기지 않겠지 싶은 믿는 구석은 좀 있었다. 그래도 마음에 잔잔히 콩콩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어린이들이 하교한 후, 언제나처럼 댓글을 써줄 파란 볼펜을 들고 산 모양으로 뒤집어진 채 걷어진 노트 앞에 앉았다. 위에서부터 한 꺼풀 한 꺼풀씩 꺼내어 노트를 열어본다.
"일단 웃다가도 정색을 하시고 정색을 하다가도 웃는 분이기 때문에 감정제어가 잘 되신다."
수업시간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너무 이상하잖아요." 하시며 농담을 하실 때는 뭔가 명랑하고 밝은 느낌이 있으시면서도 나긋나긋한 말투를 들으면 차분하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티비 화면에서 소리가 잘 안 나올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교탁 아래로 내려갔다가 오시면 티비 소리가 난다. 선생님은 좀처럼 당황하지 않으신 걸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 보인다.
선생님이 평소엔 말씀이 없어 보이지만 급식 먹을 때 옆에 앉으면 많은 질문을 하시는데 이때 선생님이 재미있다. 수업시간이랑은 말투부터 다르다.
체육시간에 짐볼 피구를 하다가 나랑 부딪혀서 선생님께서 튕겨서 저 멀리 날아가서 넘어지셨는데 다시 게임하셨다. 또 축구를 하다가 내가 축구공을 차면서 넘어질 때 나를 보고 깔깔깔 웃으시고는 똑같이 공을 차다가 내 앞에서 넘어지셨는데 "나이 들어서 너무 아파. 근데 아픈 것보다 부끄러워!" 하셨는데 좀 웃겼다. 좀 명랑한 면이 있으신 것 같다.
혼낼 때도 침착하게 "하지 마세요."라고 하는데 포스가 있다. 목소리를 높이시지도 않지만 뭔가 단호한 말투가 있다. 그러다가도 금방 다른 친구를 보고 웃으신다.
이쯤 하면 다중이인가 싶다. 이상한 교실의 선생님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뿔이 나는데, 정색하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나. 어린이들은 나의 말과 행동을 보며 한 사람은 양면, 아니 다면체의 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리라. 이후 살아가며 관계 맺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나와 잘 맞는지, 나를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여겨주는 사람인지 알아채야 할 때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상대의 말과 행동, 그리고 선택을 중심으로 살필 수 있으리라.
선생님은 말투가 나긋나긋하고 친절하시다. 그러시다가도 수업질서를 잘 지키지 않으면 눈을 마주치고 단호하게 혼을 내신다....... 이 글을 쓰면서 알아챘다. 선생님은 바로 내 태도에 따라 바뀌는 분이시다. 내가 잘하면 친절하시다가도 그렇지 않으면 무서워지시는 분이다.
찬유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성격을 분석하다가 상대의 말과 행동은 결국 관계 안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성격은 결국 상호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찬유는 어떤 말과 행동을 가지게 될까. 그 과정에 어떤 생각을 궁굴리고 꾸려가게 될까. 교과서의 글자들을 제 삶과 연결지은 찬유가 가지게 될 제 말과 행동, 생각이 궁금해지는 오후이다.